[한경데스크] 중소기업, 甲이 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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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수도권에서 자동차부품을 만드는 A사에 완성차업체 관계자가 찾아왔다. 단가를 좀 깎자는 것이었다. 전화로 안 되니까 직접 방문한 것이다. 하지만 A사 사장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납품을 못하면 못했지 우리는 그렇게 못하겠으니 당장 나가달라"고.며칠 뒤 완성차업체 관계자가 전화를 걸어왔다. "다시는 그런 일 없도록 하겠다"며 정중하게 사과했다.
최근 중소기업과 모기업 간 분쟁이 이슈다. 골자는 단가 인하다.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 · 중소기업 상생 관련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선 중소기업의 생생한 애로가 봇물 터지듯 나왔다고 한다. 이날 회의를 계기로 인위적인 상생 대신 자율 상생 쪽으로 가닥이 잡혔지만 그전까지만 해도 정부가 나서서 획기적인 대책을 모색할 태세였다. 과연 그런 대책을 만들 수 있는 것일까.
구두 계약을 서면으로 대체토록 한다든지,단체로 단가교섭을 벌인다든지 하는 여러 가지 방안도 거론됐다. 하지만 그 복잡한 거래과정에 정부가 일일이 간여할 수는 없다. 법 위반 사실이 있으면 법대로 하면 되지 그 이상 정부가 민간 거래에 간섭할 근거를 찾기도 힘들다.
기자가 중소기업 현장을 처음 취재한 20여년 전에도 이 문제가 이슈였다. 10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지금도 똑같다. 왜일까. 모기업은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한다. 설사 오너가 협력업체에 넉넉하게 주라고 해도 담당자나 임원은 단가를 깎으려 할 것이다. 자신의 실적에 밥줄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기업이 임원에 대한 성과를 평가할 때 협력업체의 납품단가 인하 문제를 결정적인 감점 요인으로 고려하지 않는 한 이 문제는 풀기 어렵다.
그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앞에서 거론한 사례는 중소기업이 나아갈 방향을 보여준다. 첫째,이 자동차부품업체는 해당 부품을 독점 생산했다. 품질이 뛰어나 어떤 업체라도 자사 제품을 사지 않을 수 없었다. 이같이 중소기업이 원천기술을 가진 경우 갑을관계가 바뀐다. 이 경우 중소기업이 갑이고 모기업이 을이 된다.
둘째,글로벌화다. 그 자동차 부품업체는 자사 제품을 얼마든지 수출할 수 있었다. 국내시장에 목을 맬 필요가 없어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다. 시골의 2류 대학을 나와 몸도 허약했고 대기업에 자사 제품을 납품할 자신도 별로 없었던 이나모리 가즈오 일본 교세라 창업자는 제품을 직접 들고 해외에 팔러다녔다. 고생 끝에 마침내 미국 IBM으로부터 많은 주문을 받고 그 뒤 내수시장에서도 강자로 올라서게 된다. 글로벌화가 중소기업 교세라를 강하게 만들어 준 것이다. 이게 바로 교토 기업들의 성장패턴이자 강점이다.
핀란드가 작지만 강한 나라가 된 것도 바로 '글로벌화하라,그렇지 않으면 죽는다(globalize or die)'는 명제가 창업자들의 머리 속에 각인돼 있었기 때문이다. 불과 500만명의 인구를 가진 핀란드 내에서만 안주하려 했다면 어떻게 노키아가 나올 수 있었을까.
복잡한 중소기업 정책의 초점은 원천기술이나 이에 버금가는 첨단기술 개발과 글로벌화 지원에 맞춰야 한다. 해외에는 국내보다 100배 이상 큰 시장이 있다. 창업 초기부터 이곳을 목표로 삼아 공략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중소기업도 이제부터는 중장기계획을 갖고 갑으로 올라서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만이 지속적인 생존과 발전을 보장해줄 수 있다는 게 바로 글로벌시대의 냉혹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
최근 중소기업과 모기업 간 분쟁이 이슈다. 골자는 단가 인하다.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 · 중소기업 상생 관련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선 중소기업의 생생한 애로가 봇물 터지듯 나왔다고 한다. 이날 회의를 계기로 인위적인 상생 대신 자율 상생 쪽으로 가닥이 잡혔지만 그전까지만 해도 정부가 나서서 획기적인 대책을 모색할 태세였다. 과연 그런 대책을 만들 수 있는 것일까.
구두 계약을 서면으로 대체토록 한다든지,단체로 단가교섭을 벌인다든지 하는 여러 가지 방안도 거론됐다. 하지만 그 복잡한 거래과정에 정부가 일일이 간여할 수는 없다. 법 위반 사실이 있으면 법대로 하면 되지 그 이상 정부가 민간 거래에 간섭할 근거를 찾기도 힘들다.
기자가 중소기업 현장을 처음 취재한 20여년 전에도 이 문제가 이슈였다. 10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지금도 똑같다. 왜일까. 모기업은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한다. 설사 오너가 협력업체에 넉넉하게 주라고 해도 담당자나 임원은 단가를 깎으려 할 것이다. 자신의 실적에 밥줄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기업이 임원에 대한 성과를 평가할 때 협력업체의 납품단가 인하 문제를 결정적인 감점 요인으로 고려하지 않는 한 이 문제는 풀기 어렵다.
그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앞에서 거론한 사례는 중소기업이 나아갈 방향을 보여준다. 첫째,이 자동차부품업체는 해당 부품을 독점 생산했다. 품질이 뛰어나 어떤 업체라도 자사 제품을 사지 않을 수 없었다. 이같이 중소기업이 원천기술을 가진 경우 갑을관계가 바뀐다. 이 경우 중소기업이 갑이고 모기업이 을이 된다.
둘째,글로벌화다. 그 자동차 부품업체는 자사 제품을 얼마든지 수출할 수 있었다. 국내시장에 목을 맬 필요가 없어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다. 시골의 2류 대학을 나와 몸도 허약했고 대기업에 자사 제품을 납품할 자신도 별로 없었던 이나모리 가즈오 일본 교세라 창업자는 제품을 직접 들고 해외에 팔러다녔다. 고생 끝에 마침내 미국 IBM으로부터 많은 주문을 받고 그 뒤 내수시장에서도 강자로 올라서게 된다. 글로벌화가 중소기업 교세라를 강하게 만들어 준 것이다. 이게 바로 교토 기업들의 성장패턴이자 강점이다.
핀란드가 작지만 강한 나라가 된 것도 바로 '글로벌화하라,그렇지 않으면 죽는다(globalize or die)'는 명제가 창업자들의 머리 속에 각인돼 있었기 때문이다. 불과 500만명의 인구를 가진 핀란드 내에서만 안주하려 했다면 어떻게 노키아가 나올 수 있었을까.
복잡한 중소기업 정책의 초점은 원천기술이나 이에 버금가는 첨단기술 개발과 글로벌화 지원에 맞춰야 한다. 해외에는 국내보다 100배 이상 큰 시장이 있다. 창업 초기부터 이곳을 목표로 삼아 공략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중소기업도 이제부터는 중장기계획을 갖고 갑으로 올라서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만이 지속적인 생존과 발전을 보장해줄 수 있다는 게 바로 글로벌시대의 냉혹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