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를 참지 못하는 기질을 가진 초나라 사람 계포는 진나라 말기 때 천하가 혼란에 빠지자 항우 밑으로 들어가 장수를 지냈다. 여러 차례 유방을 곤경에 빠트렸던 계포는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자 수배자의 신세로 전락했다. 발각을 우려한 계포는 목에 사슬을 차고 허름한 베옷을 입은 채 대협으로 이름난 노나라 주공의 집에 노비로 팔려갔다. 계포의 사람됨을 알고 있던 주가는 계포에 대한 사면을 얻어냈고 흉노 문제를 해결하는 공을 세웠다.

양나라 출신 난포는 자신이 은혜를 입은 팽월의 밑에서 대부로 일했다. 그가 제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는 동안 팽월은 모반죄로 목이 잘려 낙양성 아래 버려졌다. 제나라에서 돌아온 난포는 팽월의 머리 밑에 무릎을 꿇고 사신으로 다녀온 일을 보고한 다음 그를 위해 제사를 지내고 통곡했다. 이 일로 고조 유방에게 끌려간 난포는 "팽월이 신병으로 인해 출병하지 못한 것을 모반죄로 처형한 것은 부당하다. 어서 죽이라"며 당당했다.

강직하고 의리 넘치는 계포는 스스로 비천한 노예 신분이 되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목숨을 부지했다. 이에 비해 난포는 자신의 목숨은 아랑곳 않고 팽월을 위해 통곡했다.

죽음을 앞두고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 두 사람을 같은 '열전(列傳)'에 배치한 《사기》의 저자 사마천은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 용기가 솟아나게 돼 있다. 이는 죽는 것 자체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죽음에 대처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마천,인간의 길을 묻다》는 이처럼 사기 130권에 담긴 인간군상들을 통해 인간에 대한 통찰력을 보여준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