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그림이 기가 막히려면 氣가 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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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풍수 | 딩시위안 지음 | 이화진 옮김 | 일빛 | 392쪽 | 2만5000원
書畵 네 귀퉁이중 한 귀퉁이는
氣가 빠져 나갈수 있게 비워둬야
書畵 네 귀퉁이중 한 귀퉁이는
氣가 빠져 나갈수 있게 비워둬야
또 범관의 그림에 대해서는 "눈앞에 거대하고 험준한 산맥이 펼쳐져 있는 듯하니 그 기세가 웅장하고 필치가 노련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성과 범관의 두 그림이 문(文)과 무(武)에 해당하는구나"라고 감탄했다. 왜 그랬을까. 운무에 둘러싸인 거대한 산맥과 겨울 삼림이 아련히 펼쳐진 이성의 그림은 필치가 섬세하고 먹에 윤기가 흘렀다. 삼림은 오행 가운데 목(木)에 해당하고,그림에 내재된 기(氣)는 수려하고 점잖으므로 '문'이라 할 수 있고 방위는 동쪽이다.
이에 비해 거대한 산세와 험준한 산맥이 기세를 뽐내는 범관의 그림은 필치에 힘이 넘치고 강건하다. 따라서 무에 해당하고 방위는 서쪽이다. 왕선은 두 그림을 서재의 동서쪽에 걸어놓아 마주보게 함으로써 문무의 기세가 조화를 이루도록 했던 것이다.
《예술풍수》의 저자는 이처럼 그림에도 음양이 있다고 주장한다. 상하이중국화원 소속 화가이자 상하이미술관 연구원인 그는 "서화(書畵)예술은 그 속에 드러난 글자가 그림만이 전부가 아니며 더욱 중요한 것은 그 내면"이라고 강조한다. 글씨나 그림 안에 내재된 기(氣)의 움직임과 내재된 곳,기의 흐름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또 그림 전반에 흐르는 기의 모양새는 기국(氣局)이라 해서 역시 중요하게 여겼다.
일반적으로 그림의 네 귀퉁이 가운데 두세 군데는 기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막아야 했고,한 군데는 기가 소통할 수 있도록 남겨뒀다. 기가 소통할 수 있어야 그림은 호흡할 수 있으며 생명이 있는 것처럼 살아나게 된다. 이것이 바로 '기운생동(氣韻生動)'의 개념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가령 남송 시대 화가 이적이 그린 '풍응치계도(楓鷹雉鷄圖)'의 왼쪽 상단에는 고목의 가지에 앉은 매가 오른쪽 아래 귀퉁이로 달려가는 꿩을 노려보고 있다. 따라서 그림 전반의 기세(氣勢)가 왼쪽 상단에서 오른쪽 하단으로 크게 대각선을 그리면서 전개돼 그림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그림의 오른쪽 하단이 바로 기가 소통하는 입구다.
다른 그림에서도 이 같은 기구를 확인할 수 있다. 명나라 화가 구영이 모작한 송대의 '송간산금도(松澗山禽圖)'에는 소나무와 수려한 바위,계곡을 힘차게 흘러내리는 물줄기와 네 마리의 새가 등장한다. 그런데 이들 새는 한 마리의 새가 앉아있다가 날아가서 다시 앉아있는 모양을 한 화폭에 옮긴 것이다. 바위에 앉았던 새가 하늘로 날아 소나무에 앉아있는 모습인데,새가 표현하는 기의 흐름은 물줄기와 함께 오른쪽 하단의 기구로 향한다.
저자는 이처럼 예술 작품에 담긴 기의 존재와 흐름,기의 구조와 배열 등이 어떻게 기운생동을 이뤄내는지를 상세하게 설명한다. 예술풍수의 개요와 중국화의 재료 및 기법은 물론 산수화와 화조화 등에 나타나는 산수의 형세와 산맥의 경사도,물결의 세기,방위,화조의 배치 등이 조화와 대응을 이루면서 기를 만들고 유통시키는 원리를 송나라 범관의 '계산행여도',곽희의 '조춘도',이숭의 '월야관조도',송나라 휘종의 '부용금계도' 등 다양한 실례와 함께 소개한다.
아울러 예술품은 본연에 풍수적 요소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소장 및 전수과정에도 풍수가 작용해 길흉화복에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한다. 풍수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꾀하고 융합을 이뤄 나가는 상호작용이기 때문에 예술은 풍수를 만들 수도 있고,바꿀 수도 있다는 얘기다. 길흉에 관계되는 예술풍수의 60가지 유의 사항에 눈길이 가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그림에는 음양이 있는데 결코 둘이 바뀌어서는 안 된다. 출토된 인형이나 순장품 등을 거실 중앙에 배치해서는 안 되며,침실에는 더욱 불가하다. 그림마다 품고 있는 기의 깊이,너비,농도가 다르고 온기,한기,냉기,열기 등이 있으므로 반드시 구분해서 취사선택해야 한다. '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