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1일 시행된 타임오프제 적용을 둘러싸고 산업 현장에서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금속노조 산하 기아자동차노조는 전임자 수 유지를 주장하며 원칙을 강조하는 사측과 대립 중이다. 다음 달부터 타임오프에 합의하지 않은 사업장이 노조 전임자에 대한 임금 지급을 중단하면 일부 강성 노조의 투쟁이 더 심해질 것으로 우려된다. 이에 한국경제신문은 노동전문가와 현직 노조위원장들을 초청해 29일 한국경제신문 17층 영상회의실에서 긴급 좌담회를 가졌다. 전문가들을 통해 갈등 해소 방안을 모색해보자는 취지였다.



▼사회(윤기설 노동전문기자)=법정 한도 내 타임오프 준수 여부를 둘러싸고 갈등이 있다. 노동계가 타임오프제를 어떤 자세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정연수 서울지하철 노조위원장=노동계는 노사 자율에 맡겨달라고 주장한다. 기업별 노조의 파워는 흔히 전임자 수에 정비례하는 양상이었다. 힘있는 노조는 전임자가 많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전임자를 줄이는 것은 기득권의 상실로 받아들인다. 노동계는 "타임오프제가 노동운동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실제 노동운동의 위기는 노조 스스로 잘못해 일어나는 현상이다. 분명한 가치와 철학을 가지고 국민에게 이로운 노동운동을 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전임자 임금 지급문제는 타임오프제가 큰 획을 그었다고 볼 수 있다.

▼박준수 LG전자 노조위원장=현행 타임오프제는 지부 형태를 인정해주지 않고 전체를 묶어서 전임자 수를 제한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노조원 7800명인 LG전자노조는 타임오프 대상자가 11명으로 제한돼 많은 인원이 현업에 복귀해야 했다. 현실적으로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다. 타임오프제가 연착륙해야 하는데 충격이 너무 크다는 생각이다. 타임오프라는 큰 그림을 반대할 이유는 없지만 세부적으로 들여다 보면 많은 혼란이 일어나고 있다.

▼사회=그럼에도 LG전자 노조는 타임오프 한도를 준수했다. 어떤 생각을 갖고 한 건가.


▼박 위원장=정부에서 정한 법을 존중하고 준수하려는 정신이 깔려 있다. LG전자노조는 1990년 격렬한 파업을 겪은 뒤 투쟁만능주의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절감했다. 노사 상생의 정신이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했다. 이번에도 신뢰를 바탕으로 한 노사 상생 이념이 있었기에 지킨 것이다. 악법도 법이다.

▼사회=악법도 법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이 제도가 잘못됐다는 것인가.

▼박 위원장=현실과 괴리가 좀 있다는 얘기다.

▼사회=전임자 임금을 노조기금에서 자체 충당하면 별 문제가 없을 텐데 노조에서 그런 방안을 강구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박 위원장=대기업 노조는 자체 충당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업장이 주로 300인 미만이다. 조합비를 거둬서 줄 여건이 안 된다.

▼사회=하지만 타임오프 갈등을 겪고 있는 곳은 대부분 대기업이다.

▼김대환 인하대 교수=그동안 노조가 준비를 했다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노조에도 조직 이기주의가 강하다.

▼박 위원장=대기업 위원장들이 기득권을 놓지 않기 때문이라고 본다.

▼김 교수=타임오프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노조전임자의 급여는 원칙적으로 노조에서 주는 게 맞다. 그동안 노동현장은 불합리가 불합리를 낳았고 그 결과 기업에서 노조전임자 급여를 줘 왔다. 전임자 수를 늘리는 게 노조의 힘을 증대시키는 것이라 생각했다. 유급전임자 감소가 얼핏 노조 기득권의 훼손으로 보이지만 노조의 자주성을 찾는 것이다. 이 문제를 왜 노조가 선도적으로 제기하고 해결하려 하지 못했는가. 노동운동의 현실적인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노조는 그동안 노조 간부의 노조였다. 노동조합이 가장 민주적이어야 하는데 실질적으로 과두 지배체제였다. 이를 개선할 수 있는 유효한 방식이 전임자 임금을 노조 스스로 충당하는 것이다.

▼정 위원장=기업은 주지 않으려 하고 노조는 받으려 하고 있다. 노동운동의 본질을 잘못 알고 있기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사회=임금을 주고 싶어하는 기업도 많다.

▼김 교수=하지만 그건 지배 개입이다. 급여를 통해 통제하려 드는 것이다.

▼박 위원장=맞다. 그러면 노조가 조용해지니까….노동운동도 노사 발전을 위해 하는 것이다.

▼김 교수=그래서 일부 임금을 인정해주는 것이 타임오프다.

▼사회=그렇다면 기아차노조를 비롯한 노동계의 반발은 노동운동의 본질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발생한 현상인가.

▼박 위원장=강한 충격을 주기 때문에 불협화음이 나고 스프링처럼 튀는 것이다. 노동계는 타임오프제에 문제점이 많다며 개선을 주장하고 있다.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도 이를 심도있게 검토해 보겠다고 말했다.

▼사회=갈등이 있다고 정치권에서 개선안부터 내놓으면 또다시 근본 취지가 훼손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감이 든다.

▼김 교수=여당 대표의 립서비스는 정치인으로서 낙제점이다. 야당도 마찬가지다. 구체적인 노조법 개정안도 없이 타임오프가 정착되는 것에 방해만 한다. 정말로 책임있는 정치인이라면 이 제도가 잘 정착되도록 방향을 잡아줘야 한다. 전체 흐름 속에서 정책이나 의견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반대를 위해,혹은 립서비스 차원에서 그러는 것은 책임있는 정치인의 태도가 아니다.

▼박 위원장=안 대표는 총체적으로 한번 검토해보겠다고 했지 바꾸겠다고 한 것은 아니었다.

▼김 교수=그렇다면 다행이다. 그래도 그렇게 립서비스 하면 또 시끄러워진다.

▼사회=민주노총 위원장이 전임자 임금문제를 노사 자율에 맡기라며 단식투쟁을 벌였는데,상급단체 위원장이 그러는 게 노조 리더로서 부끄러운 행동 아닌가. 현장 위원장 입장에서 볼 때 어떤가.

▼정 위원장=노동계가 기금을 조성할 시간이 많았는데 왜 지금까지 준비를 못했느냐는 지적이 많다. 그러나 노동현장에 와 보면 수없는 선거와 조합원 갈등을 조정하느라 대안을 내놓을 경황이 없다. 위원장 임기도 2~3년으로 짧다. 연임이나 해야 지속성을 갖고 조직을 이끌 수 있다.

▼김 교수=솔직한 말이다. 결국은 노동조합 활동이 곧 노동운동이 돼버린 게 문제다. 김영훈 민노총 위원장의 타임오프 무력화 단식도 노동조합 활동의 조직논리다. 자신이 존립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정부를 흔들면 뭔가 자신들에게 떨어지는 게 있어 재미를 붙였다. 정작 노조가 비민주적 권위적 구조를 갖고 있다. 이번 타임오프제는 다소의 진통이 있더라도 바로잡아야 한다.

▼박 위원장=노조 활동하는 사람들도 프로가 돼야 한다. 반드시 전문성을 가져야 한다.

▼사회=어떤 전문성을 말하는 것인가. 아직도 이념투쟁,정치투쟁이 많은데.

▼박 위원장=노사 상생을 위한 전문성이다.

▼김 교수=대안을 내고 개선을 하려면 전문성이 필요하다. 현재 노동조직들을 보면 위원장이 있고 부위원장이 여러명 있다. 그 밑에 쟁의 교육 선전 등 전투조직으로 구성돼 있다. 과거 의식화 단계의 조직이다. 타결이 아닌 쟁취를 목적으로 한 조직들이다. 이제 노동운동도 전문성을 통해 근로자들에게 직접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조직으로 운영돼야 한다.

▼사회=노조전문성이란 결국 조합원들의 만족도를 최대한 높일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얘기로 들린다.

▼박 위원장=그렇다.

▼김 교수=노조 지도자들의 고충과 어려움을 해결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조합원들도 이기적이다. 전체적인 사회 발전을 위해 조합원들을 설득하고 묶어갈 리더가 필요하다.

▼박 위원장=그래서 우리는 대의원,노조 집행간부들을 현장의 감독자로 활용하기도 한다. 전문성이 있어서인지 기가 막히게 잘한다.

▼정 위원장=앞으로 전문성이 강화될 것이다. 이건 기회다. 그런데 일단 갑작스러운 충격을 견뎌야 한다. 현대차,기아차 노조는 전임자가 대단히 많다. 현격하게 줄어들면 기존 전임자는 현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전임자도 권력인데 이를 포기하라 하니 반발하는 것이다. 위원장들도 말을 잘못 꺼내면 조직 내에서 공격 타깃이 된다.

▼김 교수=근로자가 현장으로 돌아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 아닌가. 현장에 있다가 집행부를 구성하고,그러다 또 현장으로 돌아가야 현장과 유리되지 않는 노조 집행부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는 한번 노조 간부는 영원한 노조 간부였다. 이것이 노조의 위기가 내부로부터 오게 되는 이유다.

▼사회=노조가 전임자 임금을 스스로 충당할 준비는 안 하고 타임오프 반대만 한다는 비판이 많다.

▼김 교수=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를 유보시키는 데만 총력을 기울였지 해결책을 고민하지 않았다. 기업별 단위 조직을 큰 틀로 묶는 작업들을 줄기차게 했어야 한다. 정부가 법제도를 만들면 이를 무력화시키는 궁리만 했다. 노조는 개혁의 주체면서 개혁의 대상이란 비판을 받는 것도 이 같은 행태 때문이다. 노조가 선도적으로 고민하고 틀을 짜고 요구하면 정부와 국민이 납득할 수밖에 없다. 기득권을 안 뺏기려고 아옹다옹하니까 국민의 지지를 못 받는 것이다.

정리=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