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鄭총리 "우리나라 정치지형 너무 험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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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후 1시부터 세종로 정부 중앙청사 3층 브리핑 룸에 100여명의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정운찬 국무총리의 사퇴 기자회견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총리실의 한 관계자는 "취임할 때보다 사퇴할 때 더 주목받은 총리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정 총리는 작년 9월 정부에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소신파 학자'에서 변신,현실정치에 뛰어들었다. 2002년 대선 무렵 대권후보로 거론됐던 그였다. 그래서 총리 입문은 차기 대권 행보로 비쳐지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실정치의 벽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높고 두터웠다. 올인했던 세종시 수정안이 국회에서 좌초되자 정 총리의 입지는 급속히 약해졌다. 정 총리는 지난달 말 국회에서 세종시 수정안이 부결된 직후 사의를 밝혔다. 야권과 한나라당 친박계는 연일 사퇴 압박을 가했고 정 총리는 "자리에 연연해하지 않는다"면서 총리직을 유지해왔다.
정 총리가 여당의 재 · 보선 승리 직후 총리직을 던지기로 한 것은 이명박 대통령의 개각 구상에 부담을 주지 않는 동시에 자신도 명예롭게 퇴진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시점이라고 판단한 때문으로 보인다.
정 총리는 "10개월이라는 시간은 너무 짧았고 우리나라의 정치지형은 너무 험난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의 정치실험은 일단 미완성으로 끝난 셈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정 총리와)좀 더 같이 일하고 싶어 여러번 만류했지만 (정 총리가) 국민과 나라를 위한 충정에서 사의를 표명했다"면서 "이를 매우 안타깝게 여긴다"고 말했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
정 총리는 작년 9월 정부에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소신파 학자'에서 변신,현실정치에 뛰어들었다. 2002년 대선 무렵 대권후보로 거론됐던 그였다. 그래서 총리 입문은 차기 대권 행보로 비쳐지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실정치의 벽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높고 두터웠다. 올인했던 세종시 수정안이 국회에서 좌초되자 정 총리의 입지는 급속히 약해졌다. 정 총리는 지난달 말 국회에서 세종시 수정안이 부결된 직후 사의를 밝혔다. 야권과 한나라당 친박계는 연일 사퇴 압박을 가했고 정 총리는 "자리에 연연해하지 않는다"면서 총리직을 유지해왔다.
정 총리가 여당의 재 · 보선 승리 직후 총리직을 던지기로 한 것은 이명박 대통령의 개각 구상에 부담을 주지 않는 동시에 자신도 명예롭게 퇴진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시점이라고 판단한 때문으로 보인다.
정 총리는 "10개월이라는 시간은 너무 짧았고 우리나라의 정치지형은 너무 험난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의 정치실험은 일단 미완성으로 끝난 셈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정 총리와)좀 더 같이 일하고 싶어 여러번 만류했지만 (정 총리가) 국민과 나라를 위한 충정에서 사의를 표명했다"면서 "이를 매우 안타깝게 여긴다"고 말했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