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문제와 관련해 29일 청와대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의미있는 두 개의 화두를 던졌다. '자발적 상생'과 '포퓰리즘 경계'다. 최근 대기업에 대한 비판성 발언들을 쏟아낸 것과는 사뭇 다른 흐름이어서 주목받았다.

이 대통령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지만 정부가 인위적으로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고 자칫 포퓰리즘으로 보일 수도 있다"며 "자발적 상생이 중요하고 강제 상생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대기업과 협력업체 간 불공정한 납품단가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는 참석자들의 지적에 공감을 표하면서도 "정부가 지나치게 개입하면 오히려 중소기업이 불이익을 당할 수 있으므로 현실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강제 규정보다는 대기업이 스스로 상생문화,기업윤리를 갖추고 시정해 나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궁극적으로 10년,20년 후에는 지금의 대기업뿐만 아니라 더 많은 중견기업이 나올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자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이 대통령의 중소기업 배려 발언들이 대기업을 일방적으로 옥죄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에 대해 그런 취지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라고 청와대 관계자는 설명했다. 재 · 보궐선거에서 여당이 완승을 거두면서 '페이스 조절'에 나섰다는 분석도 있다. 정부가 대기업과 대립각을 세우는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다만 "전국경제인연합회도 대기업의 이익만 옹호하려는 자세를 가져서는 곤란하며 사회적 책임도 함께 염두에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소기업과의 협력에 주도적으로 나서고 서민들의 어려움에도 적극 관심을 가져 달라는 주문이지만 전경련만 겨냥한 것은 아니라고 김희정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이날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만성적 인력난 해소 △납품단가 등 하도급 거래질서 정비 △금융위기 이후 위축된 자금조달 여건 개선 등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대기업에 압박을 가했던 한나라당도 변화 기류가 감지된다. 서병수 최고위원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협력 체제를 만드는 것은 분명히 필요하다"며 "하지만 어느 한쪽에 사정기관의 칼날이나 압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중소기업의 자생력을 기르는 방법도 중요하다"며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윤진식 한나라당 국회의원 당선자도 "대기업과 중기의 상생 협력은 정부의 개입 없이 자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