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과 중소기업 상생을 위한 정책과제'를 주제로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비상경제대책회의.이명박 대통령을 중심으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정호열 공정거래위원장,김동선 중소기업청장 등이 둘러앉았다.

오전 7시30분에 시작된 회의는 두 시간가량 이어졌다. 이날 회의 분위기는 당초 예상과는 사뭇 달랐던 것으로 전해졌다. 중소기업 현장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인 만큼 대기업의 책임을 강조하는 발언들이 예상됐지만 '신중'하고 '중립'적인 얘기들이 주류를 이뤘다는 게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자발적 상생에 포인트

회의는 지경부 등 6개 부처 5개 기관이 최근 합동으로 실시한 중소기업 실태조사와 설문조사 결과 보고로 시작됐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불공정 거래 관행 등 현장 상황이 적나라하게 보고됐다"고 말했다. 설문조사 결과에서는 중소기업들의 볼멘소리가 가감없이 표출됐다.

"원자재값 상승에도 불구하고 납품단가가 조정이 되지 않아 연간 4억,5억원의 손해를 보고 있다. 더는 참을 수 없어서 거래 단절을 무릅쓰고 항의하고 있다"(A자동차부품사),"중소기업이 집단으로 납품단가를 협상할 수 있도록 해달라"(B기계부품사),"대기업의 불공정 사례를 익명으로 고발할 수 있게 신문고를 만들어달라"(C전자부품사)….마치 대기업의 성토장을 방불케 했다는 게 참석자의 설명이다.

하지만 보고가 끝나고 이 대통령이 발언하는 차례가 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이 대통령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불균형 문제는 현실이지만 정부가 지나치게 개입하면 취지가 훼손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자발적인 상생에 포인트를 맞췄다. 최근에 대기업을 비판하는 듯한 발언을 쏟아냈다는 점에 비춰보면 상당히 의외였다는 게 참석자들의 반응이다.

회의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반 대기업 정서가 확산되는 쪽으로 가선 안된다는 게 이 대통령의 주문이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중소기업들의 집단 납품단가 협상 요구에도 "그것은 금속노조가 하는 방식 아닌가"라고 부정적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대기업 행태에 대한 신문고 도입' 주장에는 "안그래도 인터넷 댓글이 난리인데 그런 것은 적절치 않다"고 비판했다고 한 참석자는 전했다.

◆"대기업은 위기극복 1등 공신"

회의에서 한 장관이 "대기업이 그동안 잘나갔던 이유 중 하나는 정부의 고환율 정책 덕분"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들의 납품단가를 후려치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관행"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은 "대기업이 경제위기 극복의 1등 공신인 만큼 제도적으로 시시콜콜 간섭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은 특히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납품단가 문제 등을 정부가 나서 제도적으로 보장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업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참석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관계는 정부가 나서서 이래라 저래라 해서 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만큼 시간적 여유를 갖고 기업 스스로 상생의 분위기를 조성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지적했다"고 전했다.

이 대통령의 발언에 일부 장관들도 가세했다. 정호열 위원장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납품단가조정협의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제3의 기관으로 업종별 사업자 조합이 필요하다는 일부 주장에 대해 "노조를 인정해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납품업체들이 조합을 구성해 집단으로 바게닝 파워(협상력)를 행사할 경우 공정경쟁 질서와도 어긋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 위원장은 또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거래 조건에 관한 한 당사자 간 자율적인 계약이 최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이 이날 회의에서 전국경제인연합회도 대기업의 이익만 옹호하려는 자세를 가져선 곤란하다고 지적한 발언의 의미에 대해 김희정 청와대 대변인은 "대기업도 사회적 약자를 위해 역할을 해야 한다는 뜻이며 전경련만 겨냥해서 한 발언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홍영식/정종태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