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버스를 몰다 사고를 낸 운전자,폐기물을 멋대로 불법 투기한 직원,주인 몰래 성매매를 한 모텔 종업원 등의 불법 행위에 대해 그동안 고용주 등 주인이 동시에 처벌을 받았다. 관리 의무가 있다는 논리에서였다. 하지만 학원차 운전자의 운전 잘못까지 고용주가 형사적 책임을 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았다. 둘 다 처벌하는 양벌 조항이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일종의'연좌제'라는 이유에서다.

헌법재판소가 30일 도로교통법 등 8개 법률의 양벌 조항에 대해 한꺼번에 위헌 결정을 내렸다. 고용주나 법인의 책임이 없는 경우 종업원만 처벌받아야 한다는 판단이다.

헌재 판결은 소급적용되기 때문에 이미 처벌받은 고용주들은 재심을 청구해 무죄를 받을 수 있다. 현재 재판 중인 사람도 공소 취소 등으로 풀려난다.

◆"직원범죄 법인 처벌은 책임주의 위반"

이번 헌재의 결정은 양벌 규정에서 고용주와 법인의 면책 범위를 명확히 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헌재 측은 "책임 소재를 따지지 않고 고용주와 법인에 형사 책임을 묻는 양벌 규정의 위헌성을 확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헌재가 위헌 결정한 법률은 옛 도로교통법, 옛 식품위생법,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등 4개 법률의 해당 조항이다. 모두 고용주에 대한 양벌 규정이다. 헌재는 또 소속 종업원이 위반행위를 저질렀을 경우 법인에 벌금을 부과하는 폐기물관리법,옛 조세범처벌법, 옛 산업안전보건법,농산물품질관리법 등 4개 법률 조항도 위헌 결정했다.

재판부는 "개인이 고용한 종업원의 범죄행위가 드러났을 때,가담 여부나 종업원을 감독할 주의 의무 위반 여부 등을 따지지 않고 곧바로 영업주를 종업원과 같이 처벌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법인 양벌 규정에 대해서도 "법인의 책임 범위를 규정하지 않고 단순히 종업원의 범죄행위가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법인을 형사 처벌하는 것도 위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헌재는 법인의 대표자가 업무와 관련해 위반행위를 한 경우 법인도 형사 처벌토록 한 양벌 규정은 합헌 결정했다. 재판부는 "법인 대표자의 범죄행위 책임은 법인이 부담해야 한다"면서 "대표자의 고의 · 과실 위반행위는 곧 법인의 책임"이라고 판단했다.

◆재심 청구로 무죄받아

노희범 헌재 공보관은 "이번 헌재 결정은 형사 처벌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해당 법률 조항은 즉시 효력을 잃으며 형사 처벌받은 법인이나 고용주는 벌금을 돌려받고 실형 기간에 대한 형사보상금을 받을 수도 있다. 노 공보관은 그러나 "영업정지 처분 등에 대해 민사 손해배상 청구는 가능하겠지만 사건마다 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배상을 받을 수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