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필수 메뉴던 결혼이 선택 사항인 디저트로 변해가는 중이다. 결혼이 사람이라면 반드시 해야하는 사회규범이 아니라 일종의 사치품으로 돼 가고 있다. 적어도 제도로서의 결혼은 조만간 의미를 잃을 게 분명하다. ' 가족학 연구의 권위자 스테파니 쿤츠가 '진화하는 결혼'이란 책에서 주장한 내용이다.

결혼을 인륜지대사로 여겨온 사람들에게 쿤츠의 예측은 암담하기 짝이 없다. 그는 독신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것은 물론 결혼과 출산의 분리가 가속화되고,동거의 양식과 독신생활의 방식도 질적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본다. 전통적 개념의 남녀간 결합보다는 남자와 남자,여자와 여자,싱글맘,싱글대디처럼 결혼의 외연(外延)도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내놓았다.

실제로 이런 현상은 서구는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결혼과 출산율'보고서에 따르면 25~29세 여성의 미혼율은 1990년까지만 해도 22.1%에 지나지 않았지만 2000년 40.1%,2005년 59.1%로 치솟았다. 평균 초혼연령도 1981년에는 남성 26.4세,여성 23.2세였으나 2008년에는 남성 31.4세,여성 28.3세로 5세 이상 늦어졌다. 결혼하지 않는 이유로는 '교육을 더 받고 싶어서''자아 성취와 자기 개발' 등이 54.9%로 가장 많았다. 소득이 적다거나 고용상태 불안 같은 경제적 이유가 31.9%로 그 다음이었다.
문제는 결혼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전국 기혼여성 3585명과 미혼 남녀 3314명을 대상으로 결혼 및 출산동향을 조사한 결과 '결혼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라는 데에 기혼자는 14.1%,미혼자는 20.3%만 동의했다.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는 응답도 31%나 됐다. 결혼제도 해체가 진행되면서 '미혼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혼기 놓친 자녀를 둔 부모로서는 속터질 일이지만 본인들이 알아서 하겠다는 데에는 도리가 없다. 이는 저출산으로 연결되는 탓에 국가로서도 부담이다. 혼외관계로 인한 출산이 50%에 이르는 서구와 달리 우리는 결혼과 출산의 상관관계가 높기 때문에 더 그렇다. 로마시대에는 결혼 적령기를 넘긴 미혼자에겐 독신세를 물렸다지만 요즘 같은 대명천지엔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랑의 묘약'이라도 개발해 나눠줘야 할 모양이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