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보조기기 제조업체…이익 대부분은 일자리 창출로
직원 40%가 장애인·고령자…뛰어난 아이디어와 노하우로 120조 글로벌 시장서 경쟁
1일 경기도 안산시에 위치한 사회적기업 '이지무브'.올해 여덟 살이 된 김민지(가명 · 여) 어린이가 쇼룸에 설치된 자세 교정기 위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다리를 똑바로 펴는 연습을 하고 있다. 민지는 선천적인 기형으로 다리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해 휠체어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운동을 마친 민지는 가족과 함께 쇼룸에 전시된 특수 휠체어,장애인용 운전 보조장치 등을 살펴봤다. 오도영 이지무브 대표가 "이런 보조기기들만 있으면 돌아다니는 것도 쉽고 아빠처럼 운전도 할 수 있어요"라고 하자 민지의 얼굴이 환해졌다.
◆120조원 달하는 장애인 보조기기 시장
이지무브는 올해 3월 현대 · 기아차그룹이 100% 출자해 만든 사회적기업이다. 장애인 보조기기의 연구 · 개발(R&D)과 생산 · 판매,애프터서비스 등이 사업 영역이다. 지난해 8월 현대차그룹이 발표한 사회적기업 육성 프로젝트의 첫 번째 사업으로,장애인 이동 편의를 돕는 사회공헌 활동 브랜드명을 사명으로 채용했다.
현대차그룹은 여러 사회적기업 아이템들을 놓고 고심한 끝에 장애인 보조기기 사업을 골랐다. 글로벌 시장 규모가 120조원에 달하는 데다 자동차 사업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경증 장애인으로 운전면허 발급 대상이 제한돼 있다. 반면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은 중증 장애인들에게도 운전을 허용한다. 작은 힘으로 차를 조작할 수 있는 별도의 보조기기를 차에 장착하는 게 면허 발급 조건이다.
'한 발의 디바'로 불리는 장애인 성악가 레나 마리아(40)가 중증 장애인 운전자의 대표적인 사례다. 스웨덴 국적의 마리아씨는 두 팔이 없고 한쪽 다리가 짧지만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능숙하게 차를 몰 수 있다. 볼보 등의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들이 그를 홍보대사로 위촉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직원 중 40%가 장애인과 은퇴자
이지무브는 사회적기업 중 보기 드문 제조업체다. 타깃 시장도 국내가 아닌 해외여서 글로벌 기업들과의 경쟁이 불가피하다. 사회적기업이 글로벌 영리 기업을 상대하는 것이 가능할까. 이지무브의 직원 구성을 살펴보면 이 같은 의구심이 더 짙어진다. 이 회사 직원 중 40%는 생산성이 떨어지는 장애인과 55세 이상 고령자다. 그렇다고 사회적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많은 것도 아니다. 최근 고용노동부 인건비 지원 예산이 줄어 4대 보험과 일부 세금 정도로 지원 폭이 줄어들었다.
회사 측은 장애인 보조기기는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근로자들의 생산성이 다소 떨어진다 하더라도 기술력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팔 힘이 없는 장애인이 손쉽게 움직일 수 있는 소형 핸들이나 발 대신 손으로 조작할 수 있는 브레이크와 같은 차량용 보조기기의 가격은 무척 비싼 편이다. 운전자의 장애가 심할 경우 차 값보다 비싼 5000만~6000만원어치의 장비가 필요하다. 제조업체 입장에서는 100대만 팔아도 50억~60억원의 매출이 나오는 셈이다. 오 대표는 "직원들의 체력을 감안해 업무량을 조절하고 취약계층과 숙련공의 업무를 적절히 배분하면 생산성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며 "매년 300억~4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대만 휠체어 업체들 중에도 사회적기업이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취약계층의 업무 역량이 꼭 정상인만 못한 것은 아니라는 설명도 이어진다. 55세 이상 고령자 중 상당수는 현대차그룹에서 차량 제조 노하우를 익힌 사람들이며,근력 면에서는 젊은 근로자들보다 뒤떨어지지만 업무 노하우는 오히려 한 수 위라는 것이다. 또 장애인 직원은 보조기기 수요자들의 처지를 잘 이해하고 있어 이들로부터 생생한 제품 개선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보조기기 지원은 지출 아닌 투자
이 회사는 사업으로 얻는 이익 대부분을 사세 확대에 쓸 계획이다.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게 최고의 사회공헌 활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장기적으로는 현대차 글로벌 생산기지 옆에 이지무브 공장을 나란히 설치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장애인 보조기기와 관련한 예산을 보다 늘려야 한다는 점을 정부와 정치권에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도 이지무브의 사업 목표 중 하나다. 보조기기 예산은 지출이 아닌 투자라는 게 이 회사의 믿음이다.
오 대표는 "유럽 국가들은 정부가 장애인 한 명에게 최대 1억원가량을 지원해 보조기기를 구입하게 하며,개인이 고를 수 있는 보조기기의 종류만 3만가지에 달한다"며 "생활보조금을 받는 장애인을 세금을 내는 납세자로 만들면 투자한 금액 이상의 세수가 걷힌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의 장애인 보조기기 예산은 유럽의 1%,미국의 5% 수준에 불과하다"며 "장애를 가진 국민들의 역량을 활용하려면 보조기기 관련 예산부터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산=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
● 용어풀이
사회적 기업=취약계층에게 사회적 서비스와 일자리를 제공하는 등 공익을 추구하면서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 · 판매하는 기업을 의미한다. 현재 고용노동부가 인증한 사회적기업은 전국 353개에 달한다. 사회적기업은 이윤의 3분의 2 이상을 설립 목적을 위해 써야 한다. 이지무브(현대자동차),다솜이재단(교보생명),행복도시락(SK텔레콤) 등이 대기업이 지원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회적기업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