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자연과 하나가 되는 멋진 걷기 방법을 배웠다. 충북 충주 부근 깊은 산속에서다. 방법은 간단하다. 맨발에 편안한 걸음으로 발바닥이 땅에 닿는 느낌을 그대로 음미하면서 숲길을 걷다가 어느 순간 멈추면 된다. 머리 꼭대기에서 출발해 목줄기를 타고 내려온 시원한 느낌과 발바닥 중앙을 타고 올라온 따뜻한 느낌이 가슴에서 만나 순식간에 주위의 아주 작은 소리와 소통을 한다. 미동도 없이 멈춰선 순간 숲과 내가 하나가 된다. 숲은 오랜 역사를 가진 삶의 결정체이자 살아 숨쉬는 생명체다. 잠깐 멈춤이 주는 명상이다.

얼마 전 제주도 여행에서도 이런 잠깐 멈춤의 미학을 경험했다. 비 내리는 아침에 '오름'을 올랐을 때다. 비오는 날 숲이 들려주는 자연의 소리는 맑은 날과는 또 다른 감흥을 준다. '잠깐 쉬었다 가자'는 남편의 말에 잠시 빗속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새소리,비가 두드리는 나뭇잎의 타닥거림,이곳 저곳에서 흘러나온 물이 모이며 내는 합주음들이 들려온다. 머리,어깨,손 등을 능숙하게 지압해주는 빗방울은 툭툭 소리를 내며 내게 말을 거는 듯하다.

그날 이후로 일상에서도 잠깐 멈춤의 미학은 곳곳에서 경험한다. 걸어서 출근하는 날은 차를 타고 출근하는 날의 하루와 사뭇 다르다. 집에서 연구원까지는 3개의 신호등을 건너야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멀리서 초록불을 보면 정신없이 달려들었다. 횡단보도에 다다랐을 때 적색으로 바뀌는 신호등을 보면서 드는 안타까움이란….

하지만 걷기 명상을 다녀온 뒤로는 신호등을 기다리는 마음이 달라졌다. 신호등을 기다리는 시간도 잠깐 멈춤의 시간이 된 것이다. 출근시간에 느낄 수 있는 마을의 싱그러움을 온 몸으로 확인한다. 삼삼오오 재잘거리는 초등학생들의 각양각색 책가방과 팔랑팔랑거리는 신주머니,노란색 승합차에 오르는 귀여운 유치원생들과 손 흔드는 엄마들의 모습,달리는 자동차들의 분주함까지도 모든 것이 생동감 그 자체다. 마음의 평화와 함께 하루 일정을 가다듬다 보면 하루의 계획이 정돈된다. 걸어서 출근하는 날은 하루가 흡족하고 소중한 시간이 됐다.

매일매일 앞만 보고 달리는 일상.일 하나가 끝나면 또 다른 하나의 일이 기다린다. 정확히 말하면 수없이 많은 일이 공존하는 속에 나는 온데간데 없고 일로부터 요구받는 나만이 있다. 잠깐 멈춤 시간을 가지면서 마음 속의 나를 만나게 됐다. 일이 잘 되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하고 일이 안 풀리면 안절부절 못하고 불안했던 내 고질병도 걷기 명상,잠깐 멈춤을 통해 조금씩 변하고 있는 것을 느낀다. 긴 장마가 끝나고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잠깐 멈춤의 시간이 왔다고 생각하고 잠시 하던 일들을 멈춰보라.

최선미 한국한의학연구원 본부장 smchoi@kiom.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