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국회 효율 높이려면 기업인 출신 정치인 많이 나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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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그레 회장서 정치인 변신 김호연 국회의원
나는 '슬로쿠커'
2년 전 낙선 내겐 오히려 藥, 지역 민심 더 잘 알게된 기회
빙그레의 추억
빙그레 경영은 2년 전 손 떼…김승연 회장과는 오래전 화해
중소기업 정책은
상속세 문제부터 해결해야…오너십 강화해야 자생력 커져
나는 '슬로쿠커'
2년 전 낙선 내겐 오히려 藥, 지역 민심 더 잘 알게된 기회
빙그레의 추억
빙그레 경영은 2년 전 손 떼…김승연 회장과는 오래전 화해
중소기업 정책은
상속세 문제부터 해결해야…오너십 강화해야 자생력 커져
7 · 28 재 · 보궐선거가 끝난 사흘 뒤인 지난달 31일.충남 천안시 성정동 캠프 사무실에서 만난 김호연 의원(55)의 목소리에서는 여전히 쇳소리가 났다. 그는 보름간의 선거운동 기간에 하루 스무 시간 넘게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느라 잠긴 목이 아직 낫지 않았다고 했다. 몸무게가 4㎏이나 빠졌다고 한다. 점심을 줄곧 유세차량 안에서 김밥으로 때웠다.
김 의원은 2008년 18대 총선에 출마했으나 당시 박상돈 자유선진당 후보와의 대결에서 고배를 마셨다. 상당수 천안 사람들은 그가 기약도 없이 다음 총선까지 4년을 기다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김 의원은 정치인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지역구 구석구석을 누비며 바닥 민심을 다졌다. 그런 그에게 기회가 왔다. 박 전 의원이 6월 지방선거에서 의원직을 버리고 충남지사 후보로 나선 것이다.
김 의원은 "역시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며 "처음 나선 선거에서 덜컥 붙었으면 이렇게 지역민들과 친해지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년 전 선거 때만 해도 천안 시민들이 식품업체 빙그레의 총수이자 한화그룹 창업주인 고(故) 김종희 회장의 차남이라는 그의 '스펙'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는 그후 "지역민들의 마음을 얻는 데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2년 전 낙선했을 때 마음 고생이 많았을 텐데요.
"사실 선거판에서는 7전8기로 성공한 분들도 많습니다. 처음 낙선했을 때 실망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죠.하지만 힘들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지역민들 입장도 이해가 갔습니다. 성공했답시고 고향 한번 찾지 않던 사람이 국회의원에 나간다고 천안에 왔으니 누가 좋아했겠습니까. 그런 민심이 작용해서 제가 떨어진 거죠.선거를 의식하지 않고 '이곳이 내 고향이다'는 마음가짐으로 다시 시작하니 오히려 안 보이던 것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지역민들이 무엇이 불편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말입니다. "
▼그 전 얘기를 좀 하고 싶은데요. 소위 잘 나가는 기업인이 왜 정치를 하려고 맘먹게 됐죠.
"어려서부터 언젠가는 한번 해야지라는 마음은 있었습니다. (고 김종철 전 국민당 총재가 그의 큰아버지이고,13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종식 전 의원이 그의 둘째 작은아버지다. ) 하지만 이전 정부에서는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기업인들이 출마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잖아요.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에서 당선하면서 이젠 나가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빙그레 경영을 맡아 성과를 내기까지 고생이 많았다던데요.
"제가 빙그레를 맡았을 때 시장 점유율은 1위였지만 수익성 부문에서는 제로였습니다. 그래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했죠.베이커리 사업을 삼립식품에 팔았고,냉동식품과 초코케이크 등 비주력 사업은 아예 접었습니다. 아이스크림 경쟁사인 롯데제과에서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도 받았습니다. '적과의 동침'도 망설이지 않았죠.긴 과정이었어요. "(그가 회장으로 취임했던 1992년 빙그레는 부채비율 4183%의 빚더미 회사였지만 출마 직전인 2007년 매출 5395억원,영업이익 463억원의 우량 기업으로 바뀌었다. )
▼빙그레는 누가 경영하나요.
"지금은 정수용 부회장과 이건영 사장이 회사를 잘 이끌고 있습니다. 저는 이미 2년 전 출마 때 대표이사에서 물러났습니다. 대주주로만 남아 있죠."
▼한양유통(현 한화유통) 사장 시절 형님인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그룹 지분을 둘러싸고 관계가 불편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요즘 두 분 사이는 어떻습니까.
"어휴…그게 언제 얘긴데요. 이미 1995년 모친 칠순 기념회 이후 가까워졌습니다. 어머니를 생각해서라도 잘 지내야죠.선거에 나간다고 찾아가니 진심으로 격려해 주시더군요. 그렇게 화해하고 아껴주는 것이 가족 아니겠습니까. "
▼분쟁이 있던 당시 '경영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불명예 퇴진까지 당하시지 않았습니까. 빙그레를 맡을 당시엔 마음가짐이 남달랐을 거라 짐작됩니다.
"그때는 경영 능력을 입증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빙그레 직원들과 주주들의 생사가 걸려 있었죠.바다에 빠진 사람은 헤엄쳐서 생존하는 것이 중요하지,자유형을 하느냐 배영을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정치도 마찬가지죠.국민들의 생사가 달린 문제이니까요. 지역민들을 살릴 정책으로 승부하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그 때문입니다. 회사에 훌륭한 경영 전략이 있어야 한다면 정치엔 잘 다듬어진 정책이 있어야겠죠."
▼국회가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이라는 지적이 많은데요.
"저보다 앞서 의정 생활을 한 기업인들 얘기를 들어보면 효율성과 생산성을 중시하는 기업에 있다가 정치권을 경험하면 체질에 안맞는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아요. 기업인들은 회의를 해도 한 시간 이내에 꼭 해야 할 말만 하고 끝내죠.이견(異見)만 얘기하라고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국회는 아무리 회의가 길어져도 모두가 하고 싶은 말은 다 해야 합니다. 그런 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15대 국회의원),장영신 애경그룹 회장(16대 국회의원),이인구 계룡건설 명예회장(13 · 15대 국회의원) 등 기업인 출신 의원은 꽤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몽준 의원을 제외하고는 정치생명이 길진 않습니다.
"아니 왜 없습니까. 가장 대표적인 분이 있지 않습니까. 이명박 대통령님이요. (웃음)"
▼김 의원께서는 한양유통과 빙그레의 수장으로 있으면서 갑과 을의 입장을 모두 겪어 보셨을 텐데,현 정부가 대 · 중소기업 간 상생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데 대해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불공정한 관계는 한두 해 일이 아니죠.수십년 묵은 논쟁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대기업 중심의 정책을 써왔습니다. 이제는 중소기업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할 때도 됐습니다. 관건은 중소기업을 어떻게 키울지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 능력과 의지입니다. 무작정 지원하자고 구호를 외칠 것이 아니라 자생력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을 내놔야죠."
▼어떤 대안을 갖고 계신가요.
"가장 먼저 상속세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봅니다. 오너십을 강화시켜 줘야죠.그래야만 자생력이 생깁니다. 우리나라 중소기업은 상속세를 내고 나면 남는 지분이 별로 없습니다. 경영권을 포기해야 하는 사태가 속출합니다. 우리나라는 최고 30%의 할증 과세까지 붙어 상속세율이 실제로 50%를 넘습니다. "
▼국회에서는 벌써부터 친박(친 박근혜)계로 분류되고 있다던데.
"저도 들었습니다. 아마도 대학 동문(서강대)인 데다 제가 동문회장까지 맡고 있어서겠죠.(박 전 대표를) 행사에서 많이 뵙긴 했습니다. 하지만 요즘 한나라당은 계파를 깨기 위해 굉장히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친박계냐 아니냐를 갖고 따지는 것은 시대에 맞지 않는 논쟁이죠."
▼정치에 입문하면서 다짐한 게 있다면.
"백범 김구 선생께서 자주 읊던 시를 외우고 있습니다. 원래는 서산대사가 쓰신 겁니다.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답설야중거 불수호난행,금일아행적 수작후인정)'이라는 시입니다. '눈 내린 들판을 밟아갈 때는 모름지기 그 발걸음을 어지러이 하지 마라.오늘 걷는 나의 발자국은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
김호연 의원은
김호연 의원은 스스로를 '슬로 쿠커'(slow cooker · 곰솥처럼 오래 끓여야 달아오르는 대기만성형)라고 부른다. 어렸을 때부터 "쟤는 좀 오래 걸리는 애"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뭔가를 이루는 데는 시일이 걸리는 만큼 탄탄하게 준비하는 습관을 들인 것을 스스로의 장점으로 꼽았다. 빙그레 회장 시절에도 부하 직원을 소리내 혼내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꼭 화를 내는 것만이 조직을 제대로 통솔하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 의원은 김구재단 이사장이기도 하다. 아내 김미씨는 백범 김구 선생의 손녀이자 김신 장군의 딸이다. 그는 김구재단을 통해 김구 선생 추모기념사업과 장학사업,학술지원사업 등을 펼쳐왔다.
△경기고,서강대 무역학과 졸업 △일본 히토쓰바시대 경제학 석사 △2006년 서강대 경영학 박사 △한양유통 대표이사 사장 △빙그레 대표이사 회장 △2006년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 객원연구원 △2007년 윤봉길 의사 장학재단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