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하반기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에서 비롯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 어느 덧 3년이 지났다. 대다수 경제주체에게는 다시 기억하기조차 싫은 암울한 시기였다.

현 시점에서 금융위기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외화 유동성과 금융 변수를 중시하는 세력은 이제 대부분의 금융 변수가 위기 이전으로 돌아간 점을 들어 위기가 끝났다고 본다. 하지만 여전히 부실이 많고 실물경기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는 점을 들어 위기가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이 논란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선 금융위기 극복 경로에 대한 이해가 전제돼야 한다. 한 국가의 위기는 '유동성 위기→시스템 위기→실물경기 위기'의 전형적 경로를 거친다. 위기 극복 과정도 이런 순서대로 먼저 부족한 유동성을 극복하고 위기를 낳게 한 체질을 개선하면 자연스럽게 실물 부문에 자금이 돌아 경기가 회복된다.

'위기극복 3단계론'으로 볼 때 현 시점에서 국가가 관장하는 유동성 위기는 극복됐으나 금융시스템을 복원하고 실물경기를 회복하는 작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첫 유동성 위기 극복 단계는 이제 출구전략에 들어갔거나 논쟁이 거세지는 점을 감안하면 최소한 정책당국이 관장할 단계는 지났다.

가장 중요한 두 번째 금융시스템 극복 단계도 위기를 낳게 한 기존 시스템을 보완하고 새로운 환경에 맞게 시스템을 마련하면서 비교적 순조롭게 추진되고 있다. 위기 이후 모든 금융활동에 '준거틀'이 될 미국의 금융개혁법이 발효된 데다 유럽 금융사들을 대상으로 한 스트레스 테스트도 마무리됐기 때문이다.

부실 자산 처리를 통해 금융 중개 기능을 복원하고,다른 한편으로 대대적 부양책을 병행함에 따라 글로벌 경기는 당초 예상보다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선행지표에 이어 동행지표까지 개선되기 시작한 실물경기는 실업률 등 후행지표가 개선되고 있으나 고용지표는 여전히 불확실한 단계다. 2분기 어닝 시즌이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경기에 관심이 높아져 '더블 딥(이중침체)' 문제를 놓고 경기 논쟁이 가열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따라서 이번 위기가 완전히 끝났다는 평가가 나오려면 위기 극복이 부진한 국가들의 경기를 끌어올리는 것은 우선적인 과제다. 위기 극복이 빠른 국가도 경기 회복 기운을 취약 계층까지 확산시켜 체감경기를 개선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런 과제 해결이 늦어지면 위기 극복 과정에서 발생하는 '3년 주기설'에 따라 '더블 딥' 우려가 거세질 가능성이 높다.

예상보다 빨리 이번 위기가 극복됨에 따라 다음 위기는 어디서 발생할 것인가에 벌써부터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는 것이 '10년 주기설'이다. 공교롭게 10년마다 발생한 1987년 '블랙 먼데이'(미국 증시 대폭락),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2007년 '서브 프라임' 사태가 이 설을 뒷받침한다.

국제금융가에선 지금까지 위기의 시장별 발생 패턴,즉 선진국 증시(블랙 먼데이),이머징마켓 외환시장(아시아 외환위기),선진국 주택시장(모기지 사태)을 종합해 볼 때 다음 위기는 이머징마켓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머징마켓에서 발생한 마지막 위기가 1990년대 후반 러시아 모라토리엄(국가채무 불이행) 사태여서,10여년이 지나면서 '공포의 기억'을 잊어가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머징마켓에서 위기가 발생할 경우 어떤 게 올 것인가. 이를 알아보기 위해 △단기통화 방어능력 △중장기 위기 방어능력(해외 자금조달과 국내 저축능력) △자본유입 건전도(자본유출 가능성) 등으로 파악하는 모리스 골드스타인의 '위기판단지표'에 비춰볼 때 동유럽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발생률이 높지 않다. 따라서 이머징마켓 금융시장에서 위기가 나타날 가능성은 낮다. 이머징마켓의 버블이 고조되는 상황이 아니고 서브프라임 사태처럼 금융시장 붕괴 직전에 극에 달하는 시장 모멘텀과 레버리지는 관찰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자재 시장의 강세 행진이 이머징마켓과 연결된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머징마켓 상품 시장에 유입되는 자금의 대부분이 매수에 치중(long-only)하는 자금 또는 국내 예금이다. 이는 이머징마켓 상품 시장의 과열을 보여주는 증표라 볼 수 있다. 특히 중국이 부존자원을 싹쓸이함에 따라 위기 이후 주도권 확보에 위협을 느낀 미국 등이 경쟁적으로 이 전쟁에 뛰어들 경우 다음 위기는 '상품위기'가 되고,그 시기도 10년 주기설보다 앞당겨질 수 있다는 경고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