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뒤엉킨 또 다른 현실…렌즈로 잡아낸 '진정한 리얼리티'
사진의 힘은 리얼리티에 있다. 카메라는 오랫동안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도구로 활용돼 왔고 지금도 현실세계를 가장 정직하게 비추는 '거울'이다.

세계 사진계에서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는 사진들을 발 빠르게 선보여온 가나아트갤러리(대표 이옥경)가 '제10회 포토 페스티벌'을 마련했다.

'포스+그라포스(phos+graphos)'라는 테마로 22일까지 서울 평창동 전시장에서 열리는 이번 페스티벌에는 '소나무 작가' 배병우씨를 비롯해 김인숙,백승우씨 등 국내파 3명을 초대했다. 출품작 50여점은 리얼리티 의미에 초점을 맞췄다. '진정한 리얼리티'란 물음을 통해 비주얼 커뮤니케이션으로서 사진의 현재와 가능성,현실과 가상의 간극을 되짚어볼 수 있는 자리다.

'3인3색'이라 해도 좋을 만큼 3명의 작가는 제각기 카메라를 통해 바라본 현실을 개성적인 시각으로 변주하고 있다.

이들은 주변의 익숙한 이미지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는 것'을 실상이라고 믿는 우리의 실상과 뒤엉켜있는 또 다른 현실의 조각들을 찾아내기 위해 힘을 쏟았다.

배병우씨(61)는 수묵화 같은 느낌을 주는 신작 '바다' 시리즈를 통해 자연의 원초적인 이미지를 보여준다. 물과 바람의 흔적을 추적하며 한려수도 '들춰보기'를 유도하거나,문명에 가려진 자연의 아름다움을 되찾는 것이 그의 목적이다. 그가 바라본 풍경을 그대로 사진에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관람자들의 마음 속에 자연의 정서를 투영시킨다.

산수화의 형식을 통해 자연주의 사상을 렌즈로 녹여낸 만큼 그의 사진들에는 장엄미가 넘쳐난다. 그의 작품이 '사(寫心)심의 산수화'로 불리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자연 속으로 마음을 깊숙이 들이밀어 감동을 만들어내는 그의 방식은 드넓은 바다를 통해 시간을 조율하는가 하면 사람의 흔적을 지움으로써 일상을 낯설게 하기도 한다.

세계 사진계의 기대주로 주목받고 있는 백승우씨(37)의 작품 소재는 '북한'이다. 2001년 한복디자이너 이영희씨의 평양패션쇼에 4주 동안 동행했을 때 찍은 작품들이다. 건물을 극적으로 높이거나 웅장함을 강조하는 형태로 탈바꿈시켰다. 배경에는 다채로운 색을 입혔다. '이것이 허구다'라고 직설적으로 내미는 것 같다.

여성의 집단적인 정체성을 카메라 렌즈로 잡아낸 작품도 흥미롭다. 백씨와 함께 제1회 일우사진상의 '올해 주목할 만한 작가'로 선정된 김인숙씨(40)는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을 판타스마고리아(phantasmagoria · 스쳐 지나가는 장면)처럼 잡아냈다.

그의 '약국'과 '헤로인' 시리즈는 인간의 성적 본능과 육체를 상품화하는 소비사회의 메커니즘을 환각처럼 묘사한 작품이다.

거울 혹은 유리창에 비친 벌거벗은 여인들의 모습이 마치 집장촌 풍경처럼 다가온다. '인사이드 아웃' 시리즈는 뉴욕 고층 빌딩의 유리창으로 들여다 보이는 여성의 '몸짓'을 포착해 리얼리티를 한층 살려냈다. 건축물 속의 여인들을 현대 사회의 과열된 욕망으로 묘사한 것이 이채롭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이옥경 가나아트갤러리 대표는 "이미지로 대체된 현실의 허구성에 대한 지적은 오랫동안 예술의 주제가 되어 왔다"며 "세 작가의 작품들을 통해 우리가 믿고 있는 현실의 색다른 리얼리티를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02)720-1020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