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애널리스트 경력 14년차인 A씨(40)는 이달 초 여섯 번째 회사를 옮겼다. A씨는 2년마다 몸값을 흥정하고 재계약하는 데 지쳤지만 요즘에는 잔뜩 희망에 부풀어 있다. 2년 뒤 투자자문사를 차리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A씨는 "갈수록 애널리스트의 연령대가 낮아지고 펀드매니저도 나이 많은 애널리스트를 껄끄러워 해 새로운 길을 찾게 됐다"며 "앞으로 2년간 돈을 더 모으고 투자자 3~4명만 유치하면 충분히 창업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자문형 랩이 인기를 끌면서 투자자문사 창업이 증권맨들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들어 7월까지 신규 자문사 등록건수는 23건으로,2008년(22건)과 2009년(20건) 연간 등록건수를 이미 넘어섰다. 지난달에만 6개 자문사가 문을 열었다. 전체 자문사 128개 중 최근 2년7개월 동안 65개가 새로 생겨난 것이다.

미래에셋자산운용 간판 펀드인 '미래에셋디스커버리'를 운용하던 서재형 리서치본부장(전무)은 최근 퇴사하고 자문사 창업을 준비 중이다. 한 운용사 펀드매니저는 "서 전무가 함께 일할 펀드매니저를 수소문하고 있으며 한 대형 운용사 펀드매니저가 합류하기로 했다"고 귀띔했다.

대형 증권사 애널리스트 B씨는 "친한 펀드매니저와 애널들이 모일 때마다 창업을 화제로 올린다"며 "평생 월급쟁이로 사느니 한번 구멍가게 주인이라도 돼 보자고 의기투합해 당장 내년에 자문사를 차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슈퍼개미'들도 자문사 창업에 도전하고 있다. 종잣돈 7000만원을 5년 만에 140억원으로 불려 유명해진 김정환 밸류25 대표는 금감원에 곧 등록하고 다음 달 중순부터 자문사 영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이미 펀드매니저 3명을 영입했고,대형 증권사와의 자문형 랩 출시도 결정했다.

증권맨과 슈퍼개미들이 자문사 창업을 꿈꾸는 것은 독립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데다 그만큼 보상도 크기 때문.여기에 자본시장법 시행으로 자문사 창업 문턱이 낮아져 단순 자문업의 경우 자본금 5억원,일임업은 15억원이면 설립이 가능해진 영향도 있다. 펀드매니저 C씨는 "같은 5000억원을 굴려도 운용사에선 1억~2억원을 받지만 자문사에선 성과 보수에 따라 최고 50억원도 벌 수 있어 자문사 창업이나 이직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보미/강현우 기자 bm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