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양동마을이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지난 1일 현지를 찾은 관광객은 평소보다 세 배 더 많은 1000여명이나 됐다. 관광객들을 안내하는 이지휴씨(61)는 이들을 안내하느라 하루 종일 비지땀을 흘려야 했다. 일본어 전담 안내원이 있지만 이날 일본 관광객이 2명에 불과했으니 모두 그의 몫이었다.

이씨는 "전 세계가 양동마을에 관심을 갖게 돼 기쁨도 크지만 500년 동안 이어져온 양동마을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어떻게 계승 발전시켜 나갈지 걱정부터 앞선다"고 했다. "단순히 관광서비스 차원에서 육성한다면 30년도 못 가 양동마을의 정신적 가치와 문화유산은 빈껍데기가 되고 말 것"이라는 게 그의 걱정이다.

땀에 흠뻑 젖은 하얀 러닝셔츠에 고무신을 신은 그는 농촌의 전형적인 촌로다. 하지만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서 묻어나오는 역사문화적 깊이는 정통 사학자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는 고향에 돌아오기 전만 해도 잘나가는 은행원이었다. 그런 그가 마을에 홀로 계신 어머니를 잠시 돌보기 위해 내려왔다가 3대째 내려오는 송국주(가양주)에 푹 빠져 결국 고향에 눌러앉은 게 1998년.회재 이언적 선생의 17대 손이기도 한 그는 그때부터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고향마을을 안내하면서 자연스럽게 문화유산 해설사로 변신했다. 몸은 고단했지만 수많은 국내외 학자들이 마을을 줄지어 찾을 정도로 양동마을의 역사문화적 가치가 한층 깊어지고 있다는 데 자부심을 느껴오던 터다.

이씨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 해 5만~6만명에 그치던 관광객이 이젠 20여만명으로 불어났다"며 "이젠 내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사력을 다해야 할 때"라고 힘주어 말했다. '하드웨어'인 한옥을 지켜가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선비들이 지켜온 유교의 전통과 생활습관 정원문화 예의범절 음식 온돌 제사 등 양동마을에 살아숨쉬고 있는 '소프트웨어'를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잠시 땀을 닦으며 다음 안내시간을 기다리는 그의 모습에서 현대인들에게 양동마을이 영원한 이상향으로 간직되길 바라는 간절함을 읽을 수 있었다.

하인식 경주/사회부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