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요미우리 공동 韓·日 기업인 인터뷰]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
한국경제신문과 요미우리신문은 '한 · 일 대표 기업인 200명 설문조사' 기획의 일환으로 두 나라의 대표적 기업인을 공동 인터뷰했다. 미래지향적 한 · 일 경제관계에 대한 현장 기업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공동 인터뷰엔 한국에서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이,일본에선 사사키 미키오 미쓰비시상사 상담역이 응했다. 사사키 상담역은 올해로 창립 50주년을 맞는 일한경제협회 회장을,이 부회장은 한일경제협회 부회장을 각각 맡고 있다.

이 부회장은 "일본 기업들은 기초 체력이 강하고,부품과 소재 분야 기술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며 "두 나라 기업들은 서로의 강점을 살려 '윈-윈(win-win)'하는 동반자적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한국 · 일본 · 중국이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어 역내 효율을 높이고 수요를 창출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두 나라가 FTA 스탠더드를 만들어 중국에 권유하는 형태로 진행하면 좋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 부회장을 지난달 말 삼성전자 서초동 사옥에서 만났다.

▼한 · 일 관계는 앞으로 어떻게 나가야 합니까.

"한국 경제가 성장하게 된 배경에는 일본으로부터의 여러 가지 경제,기술,경영적인 도움이 적지 않았습니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700억달러 정도의 무역 거래가 있습니다. 우리가 일본에서 사오는 게 500억달러 정도고,수출은 200억달러 정도입니다. 300억달러 무역 역조가 발생하고 있지만,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일본에서 사온 부품으로 한국 기업은 디바이스(단말기)를 만들어 중국에 수출하고,중국은 이를 조립해 최종적으로 수출하고 있습니다. 역내에서 보면 서로 '윈-윈'하는 균형을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한국 · 일본 · 중국 간 FTA를 맺어 역내의 효율뿐 아니라 수요를 창출해야 합니다. "

▼한 · 일 FTA 논의가 2004년 이후 멈췄습니다.

"최근 대만이 중국과 FTA 비슷한 형태의 협정을 맺었습니다. 대만과 경쟁하고 있는 한국 기업들 사이에선 중국과의 FTA를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한 · 일 FTA 논의가 겉돌고 있는 건 한국은 일본의 공산품이 들어오는 것을 두려워하고,일본은 한국의 농산품이 들어오는 것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최근 일본이 국내 부품회사에 투자해 산업을 육성하는 방안들이 논의되고 있는데,이런 것이 두 나라 FTA 추진에 밑거름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과 일본이 FTA 스탠더드를 만들어 중국에 권유하는 형태로 진행하면 좋지 않을까요. "

▼한국 기업들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강해진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한국 전체에 대해서 얘기할 수는 없겠지만,삼성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삼성은 외환위기 당시 글로벌한 기업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1993년 이건희 회장께서 '신(新) 경영'을 말하며 모든 것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지만,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기 전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외환위기를 맞아 제대로 된 선택과 집중을 하게 됐습니다. 강력한 혁신,구조조정도 경쟁력 있는 체제를 갖추게 된 요인입니다. "

▼한국과 일본 기업들의 장 · 단점은 무엇입니까.

"한국은 경제 규모로 볼 때 일본의 규슈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만큼 '스피드 경영'이 가능합니다.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삼성은 '오너 경영'과 '전문인 경영' 체제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일본 기업들은 기초 체력이 강하고,부품 소재 등에서 기술력이 뛰어납니다. "

▼한 · 일 기업들이 애플이나 구글 같은 회사에 비해 소프트웨어 부문이 약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예컨대 삼성은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부품을 공급하는 회사입니다. 기업의 체질이 다르죠.지금까지 삼성은 TV,휴대폰 등을 단품 위주로 생산했습니다. 여기에 어떻게 솔루션,서비스,애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 등으로 부가가치를 만드느냐가 중요합니다. "

▼일본 기업 중에 벤치마킹할 회사가 있습니까.

"기업마다 특성이 있지만 캐논을 꼽고 싶습니다. 솔루션,하드웨어 등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갖고 있습니다. 덕분에 아무리 불황이 와도 적자를 내지 않습니다. 도요타도 배워야 할 기업입니다. 최근 리콜 사태로 어려움을 겪긴 했지만 제조,생산 실력은 세계적입니다. 닌텐도는 소프트웨어,서비스로 부가가치를 높이는 창조적 회사로 벤치마킹할 만합니다. "

▼일본 교토의 기업들이 뛰어난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교토식 경영의 강점은 무엇입니까.

"선택과 집중입니다. 호리바는 자동차 배기가스 분석 기기에서 세계 최고입니다. 관련 분야에 강점을 보이는 회사들을 모조리 인수합니다. 인수한 기업의 직원 수가 본사보다 훨씬 많습니다. 니혼덴산은 모터 분야에서 세계 최고 기업입니다. 도시바 히타치 등의 모터 부문을 사들이며 최강이 됐습니다. 무라타제작소는 부품 분야에서 최고입니다. "

▼일본 기업의 의사결정이 느리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이유는 무엇이라고 봅니까.

"일본은 집단 의사결정 시스템에 의해 운영됩니다. 최고경영자가 대부분 결정하는 미국 등과 달리 집단으로 결론을 내리니까 시간이 걸립니다. 경영 시스템의 차이라는 얘기입니다. "

▼중국 시장을 어떻게 전망합니까.

"중국은 수출 위주로 성장해왔는데 최근 유럽이나 미국의 경제가 별로 안 좋아서 성장이 조금 수그러들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내수를 열심히 개발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중국은 인구가 매우 많고 내수 잠재력이 큽니다. "

▼중국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우선 기술 개발과 혁신을 지속해야 합니다. 그래야 차별화가 가능합니다. 글로벌화와 함께 현지화도 필요합니다. 중국 회사들은 자국에서 자재를 조달하고 값싼 노동력을 이용합니다. 한 · 일 기업들도 중국에서 자재를 조달하고 현지에서 공장을 운영하면 중국 기업보다 못할 건 없습니다. "

▼한 · 중 · 일이 세계경제에 어떤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세계경제는 아시아가 이끌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럽연합 북미자유무역협정과 같은 역내 공동체가 아시아에는 아직 없습니다. 최소한 경제공동체,나아가 금융 분야는 협력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시아통화기금(AMF) 같은 것을 만들어 헤지펀드 투기 세력을 막아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신사업도 중요합니다. 전기 자동차,스마트 그리드(지능형 전력망),환경 등의 분야에서 아시아가 주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

대담 = 이학영 한국경제신문 편집부국장
아베 준이치 요미우리신문 편집위원

이윤우 부회장은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65)은 한국 반도체 신화 주역 중 한 명으로 연구 · 개발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전자업계의 대표적 경영자이다. 1968년 삼성에 입사해 1976년부터 반도체와 인연을 맺고 메모리 및 액정표시장치 분야를 세계 1위에 올려놓는 데 기여했다. 이 부회장은 현재 대표이사로서 이사회 의장직을 맡고 있으며 서울상공회의소 부회장,지속가능발전기업협의회 부회장,한일경제협회 부회장 등을 맡아 활발한 대외활동을 펼치고 있다.

◆약력

▷1946년생 ▷서울대 전자공학과 졸업 ▷1968년 삼성 입사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부사장(1994년)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사장(1996년) 삼성종합기술원장 · 부회장(2004년) 삼성전자 기술총괄 부회장(2005년) 총괄대표이사 부회장(2008년) 대표이사 부회장 겸 이사회 의장(201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