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대 연봉에다 권한도 막강해 '신의 직장'으로 꼽히는 금융감독원이 한 중간 간부의 이직소식으로 뒤숭숭하다. 증권 부문의 한 부국장(수석팀장)이 내달부터 김앤장으로 출근하기 위해 지난 주말 전격 사표를 냈기 때문이다.

이직은 이제 뉴스 축에도 못 낀다지만 국장 승진 '0순위'였던 수석팀장이 주인공이란 점에서 파장이 만만치 않다. 퇴직 후 금융회사 감사 등으로 모셔가는 고위직급인 국장 자리를 포기하고 전직한 사례는 처음이라고 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국장을 눈앞에 두고 을(乙 · 금융사)도 아니고 상장사 수임에 목매는 병(丙)이 되겠다는 결정은 쇼크"라고 말했다.

당사자가 자본시장 조사 · 검사 · 공시 등을 섭렵한 데다 위아래 신망이 두터운 인재라 더 안타깝다는 반응들이다. 정작 본인은 "교육비도 그렇고 돈 들어갈 곳이 많아서…"라고 에둘러 말하지만 직원들은 부쩍 쪼그라든 금감원의 위상을 놓고 수군대는 분위기다. 커지는 시장의 힘이 버거운 마당에 '큰집' 격인 금융위원회와의 갈등으로 권한마저 대폭 축소되는 등 힘든 상황이 오버랩되기 때문이다.

이런 의욕저하는 금융위에서도 목격된다. 금융위는 현 정부 출범 후 기존 금융감독 기능에다 기획재정부의 금융정책 기능을 떼와 막강 부처가 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불과 2년여 만에 '일은 많고 실속은 없다'는 평가가 대세다. '최소 차관감'이라던 실력파 국 · 과장들이 잇따라 민간으로 전직했다. 심지어 퇴직 · 유학 등의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 다른 부처 사무관들을 대상으로 3~4차례나 전입희망자 공고를 냈을 정도다.

시장에서도 걱정이 많다. 한 증권사 사장은 "정책방향 실종,낙하산 인사,해바라기성 리더십 등이 복합돼 금융인재들의 무력감이 커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금융 선진화'라는 거창한 구호는 퇴색되고 피로감만 쌓이고 있다는 얘기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미소금융,햇살론처럼 논란 많은 정책만 부각되고 시장의 미래를 구상하는 논의는 이슈에서 밀려나고 있다"며 "시장과 직원들을 배제하고 '위'만 쳐다보는 리더십으론 혼란을 수습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선진화라는 목표가 여전히 유효하다면 금융 컨트롤타워의 사기진작 방안부터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시점이다.

백광엽 기자 증권부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