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함께 창의 경영] (12) "까다로운 수출 상담도 '책 이야기'로 쉽게 풀죠"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12) 손종호 LS전선 사장
사내 '손즈 북카페' 개설
임직원에 책 선물·추천
독서경영으로 소통 빨라져
사내 '손즈 북카페' 개설
임직원에 책 선물·추천
독서경영으로 소통 빨라져
사진을 찍기 위해 그가 무심코 펼쳐든 책갈피를 흘낏 보니 빨간 볼펜과 형광펜으로 밑줄을 치고,중요한 단어나 구절에 동그라미를 그리고,여백에는 메모를 한 흔적이 빼곡하다. 성격상 속독이나 통독,건너뛰며 읽기를 못한다는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완벽주의자다. 일은 물론 책읽기에도 이런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다.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것 같은 장(章)도 읽지 않고는 넘어가지 못한다. 그 안에 자신과 직원들에게 도움이 될 한 마디라도 들어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다.
연매출이 3조원을 넘는 대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이토록 꼼꼼히 책을 읽을 시간이 있을까. 그런데도 그는 한 달에 평균 10권의 책을 정독한다. 집과 사무실,자동차 등 곳곳에 책을 두고 틈나는 대로 읽는 덕분이다. 해외출장은 독서의 황금시간이다. 오가는 비행기 안에서 내내 책을 읽을 수 있어서다. '그린 비즈니스'에 관심이 많아서 제목이 '그린'이나 '에코'로 시작하는 책은 거의 다 읽었을 정도다.
그래도 그는 책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사다 놓고 미처 읽지 못한 책 때문이다. 줄잡아 한 달에 15권을 사서 5권은 읽지 못한 채 숙제로 남긴다. 책에서 기쁨도 얻고 스트레스도 받는 사람,손종호 LS전선 사장(58) 이야기다.
"산수유 광고처럼 책을 읽으면 좋은데,정말 좋은데 그걸 모르는 사람들이 아직 많아요. 정신과 전문의이자 뇌과학자인 이시형 박사가 쓴 《공부하는 독종이 살아남는다》에 '책을 읽으면 세로토닌이 나온다'는 내용이 있어요. 책을 읽으면 감정을 조절하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이 나온다는 겁니다. 그래서 책을 읽을수록 더 책을 찾게 되나봅니다. 좋으니까요. "
손 사장은 2008년 7월 대표이사에 취임한 이후 매달 자신이 읽은 책 가운데 두세 권을 임직원들에게 선물한다. 책은 새로운 정보를 접하고 문화적 소양을 기르며,사고를 깊게 해주는 통로라고 믿기 때문이다. 책의 내용에 따라 전 직원을 대상으로 선물하기도 하고,임원 · 출자회사 사장 · 해외법인장 · 팀장 등에게 선택적으로 주기도 한다.
지난해 3월에는 사내 인트라넷에 '손즈 북카페(Son's Book Cafe)'를 개설해 책을 매개로 한 소통 공간을 마련했다. 손 사장이 북카페의 '손(Son)의 경영스토리' 코너에 추천도서를 소개하면 직원들은 그 책을 읽고 독후감을 올린다. 올라온 독후감에는 손 사장을 포함한 모두가 댓글을 달며 의견을 나눈다. 또 직원들도 책을 추천하고,도서요약 서비스를 해준다.
"지난해 5월 《에티켓을 먹고 매너를 입어라》라는 책을 추천했을 때였어요. 책을 읽은 직원들이 독후감과 댓글로 논쟁을 벌였어요. 젊은 직원들은 왜 서양의 에티켓만 스탠더드냐,왜 우리 것은 틀리고 그쪽 것은 옳다고 해야 하느냐며 반발하기도 했죠.논란이 한참 진행된 다음에 제가 댓글을 올려 이렇게 정리했어요. '문화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다를 뿐이다. 다만 기업하는 사람이 물건을 파는 입장에서 상대방의 문화를 알아야 소통하기 쉽다. 인도에 가서 왼손으로 음식을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그게 틀려서가 아니라 인도 사람들에게는 그게 관습이니까 존중해줘야 한다'고 말이죠.문화도 마찬가지예요. 외국 사람들과 음악,오페라,소설,그림,역사와 유적 등을 화제로 이야기해보면 의외로 상담이 쉽게 풀리는 걸 알 수 있습니다. "
손 사장이 "독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LS전선 임직원들은 지난해 초 손 사장이 독서경영을 주요 경영지침으로 선포한 이후 남들이 들으면 '은어'같은 이야기를 자주 주고받는다. 'N=1,R=G'와 같은 생소한 공식이 대표적인 사례다. 《새로운 혁신의 시대》에 나오는 이 말은 소비자의 수(N)는 단 1명(1)이며,그를 위한 상품을 만들기 위한 자원(R)은 글로벌(G) 네트워크를 통해 얻어야 한다는 뜻.LS전선 직원들은 지난해 8월 이 책을 읽고 이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전선과 통신선을 만드는 전통적 제조기업이지만 한가지 상품만 판매하는 데서 벗어나 글로벌 자원 네트워크를 통해 고객의 요구를 패키지로 해결하는 쪽으로 사업모델을 바꾸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단일 상품이 아니라 솔루션이나 애플리케이션을 판매하겠다는 것이다.
"독서경영을 본격화한 이후 회사의 소통 속도가 매우 빨라졌어요. 《신뢰의 속도》에 나오는 것처럼 서로 믿는 사이에는 눈만 마주쳐도 통하니까 긴 설명이 필요없지요. 반면 믿지 못하는 직원에게 일을 시키면 지시사항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해야 하고 나중에 제대로 했는지 점검도 해야 하니까 불필요한 시간을 빼앗기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같은 책을 읽은 임직원들이 서로 같은 용어를 사용하니까 많은 설명이 없이도 서로 통할 수 있어서 아주 편해졌어요. "
손 사장이 지향하는 독서경영은 지식경영의 일부다. 그는 독서경영을 본격화하기에 앞서 전 사원의 머리와 컴퓨터,연수보고서 등으로 흩어진 지식과 정보를 '지식두레'라는 그룹웨어에 통합해 지식공유 체제를 마련했다. 북카페에 독후감을 올린 사원들에게 책값을 지원해주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회사가 독후감을 지식자원으로 공유하는 대가로 책값을 준다는 것.그는 "지금은 지식경영의 시대라 고정자산보다 무형의 자산,지식자산을 모아서 융합하고 재창조해 얼마든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수 있다"며 "독서야말로 지식의 보고를 접할 수 있는 통로"라고 강조한다. 그가 서툰 '독수리 타법'으로 북카페에 글을 올리고 댓글을 달며 젊은 사원들과 소통하고 책읽기를 장려하는 것도 이런 때문이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한국경제·교보문고 공동기획
연매출이 3조원을 넘는 대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이토록 꼼꼼히 책을 읽을 시간이 있을까. 그런데도 그는 한 달에 평균 10권의 책을 정독한다. 집과 사무실,자동차 등 곳곳에 책을 두고 틈나는 대로 읽는 덕분이다. 해외출장은 독서의 황금시간이다. 오가는 비행기 안에서 내내 책을 읽을 수 있어서다. '그린 비즈니스'에 관심이 많아서 제목이 '그린'이나 '에코'로 시작하는 책은 거의 다 읽었을 정도다.
그래도 그는 책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사다 놓고 미처 읽지 못한 책 때문이다. 줄잡아 한 달에 15권을 사서 5권은 읽지 못한 채 숙제로 남긴다. 책에서 기쁨도 얻고 스트레스도 받는 사람,손종호 LS전선 사장(58) 이야기다.
"산수유 광고처럼 책을 읽으면 좋은데,정말 좋은데 그걸 모르는 사람들이 아직 많아요. 정신과 전문의이자 뇌과학자인 이시형 박사가 쓴 《공부하는 독종이 살아남는다》에 '책을 읽으면 세로토닌이 나온다'는 내용이 있어요. 책을 읽으면 감정을 조절하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이 나온다는 겁니다. 그래서 책을 읽을수록 더 책을 찾게 되나봅니다. 좋으니까요. "
손 사장은 2008년 7월 대표이사에 취임한 이후 매달 자신이 읽은 책 가운데 두세 권을 임직원들에게 선물한다. 책은 새로운 정보를 접하고 문화적 소양을 기르며,사고를 깊게 해주는 통로라고 믿기 때문이다. 책의 내용에 따라 전 직원을 대상으로 선물하기도 하고,임원 · 출자회사 사장 · 해외법인장 · 팀장 등에게 선택적으로 주기도 한다.
지난해 3월에는 사내 인트라넷에 '손즈 북카페(Son's Book Cafe)'를 개설해 책을 매개로 한 소통 공간을 마련했다. 손 사장이 북카페의 '손(Son)의 경영스토리' 코너에 추천도서를 소개하면 직원들은 그 책을 읽고 독후감을 올린다. 올라온 독후감에는 손 사장을 포함한 모두가 댓글을 달며 의견을 나눈다. 또 직원들도 책을 추천하고,도서요약 서비스를 해준다.
"지난해 5월 《에티켓을 먹고 매너를 입어라》라는 책을 추천했을 때였어요. 책을 읽은 직원들이 독후감과 댓글로 논쟁을 벌였어요. 젊은 직원들은 왜 서양의 에티켓만 스탠더드냐,왜 우리 것은 틀리고 그쪽 것은 옳다고 해야 하느냐며 반발하기도 했죠.논란이 한참 진행된 다음에 제가 댓글을 올려 이렇게 정리했어요. '문화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다를 뿐이다. 다만 기업하는 사람이 물건을 파는 입장에서 상대방의 문화를 알아야 소통하기 쉽다. 인도에 가서 왼손으로 음식을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그게 틀려서가 아니라 인도 사람들에게는 그게 관습이니까 존중해줘야 한다'고 말이죠.문화도 마찬가지예요. 외국 사람들과 음악,오페라,소설,그림,역사와 유적 등을 화제로 이야기해보면 의외로 상담이 쉽게 풀리는 걸 알 수 있습니다. "
손 사장이 "독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LS전선 임직원들은 지난해 초 손 사장이 독서경영을 주요 경영지침으로 선포한 이후 남들이 들으면 '은어'같은 이야기를 자주 주고받는다. 'N=1,R=G'와 같은 생소한 공식이 대표적인 사례다. 《새로운 혁신의 시대》에 나오는 이 말은 소비자의 수(N)는 단 1명(1)이며,그를 위한 상품을 만들기 위한 자원(R)은 글로벌(G) 네트워크를 통해 얻어야 한다는 뜻.LS전선 직원들은 지난해 8월 이 책을 읽고 이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전선과 통신선을 만드는 전통적 제조기업이지만 한가지 상품만 판매하는 데서 벗어나 글로벌 자원 네트워크를 통해 고객의 요구를 패키지로 해결하는 쪽으로 사업모델을 바꾸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단일 상품이 아니라 솔루션이나 애플리케이션을 판매하겠다는 것이다.
"독서경영을 본격화한 이후 회사의 소통 속도가 매우 빨라졌어요. 《신뢰의 속도》에 나오는 것처럼 서로 믿는 사이에는 눈만 마주쳐도 통하니까 긴 설명이 필요없지요. 반면 믿지 못하는 직원에게 일을 시키면 지시사항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해야 하고 나중에 제대로 했는지 점검도 해야 하니까 불필요한 시간을 빼앗기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같은 책을 읽은 임직원들이 서로 같은 용어를 사용하니까 많은 설명이 없이도 서로 통할 수 있어서 아주 편해졌어요. "
손 사장이 지향하는 독서경영은 지식경영의 일부다. 그는 독서경영을 본격화하기에 앞서 전 사원의 머리와 컴퓨터,연수보고서 등으로 흩어진 지식과 정보를 '지식두레'라는 그룹웨어에 통합해 지식공유 체제를 마련했다. 북카페에 독후감을 올린 사원들에게 책값을 지원해주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회사가 독후감을 지식자원으로 공유하는 대가로 책값을 준다는 것.그는 "지금은 지식경영의 시대라 고정자산보다 무형의 자산,지식자산을 모아서 융합하고 재창조해 얼마든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수 있다"며 "독서야말로 지식의 보고를 접할 수 있는 통로"라고 강조한다. 그가 서툰 '독수리 타법'으로 북카페에 글을 올리고 댓글을 달며 젊은 사원들과 소통하고 책읽기를 장려하는 것도 이런 때문이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한국경제·교보문고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