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 회장은 2005년 스탠퍼드대 졸업식 축사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누구도 미래를 내다보며 점을 이을 순 없다. 점은 뒤를 돌아볼 때 이어질 뿐이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지금 만드는 점이 미래에 어떤 식으로든 이어질 것을 믿어야 한다. "

대학 시절 잘 곳이 없어 친구들 방의 바닥에서 자고 5센트짜리 빈 콜라병을 모아 음식을 사먹었다는 그는 인생이란 순간순간의 행동인 점과 그것이 이어진 선,그리고 그 선이 만드는 면으로 이뤄진다며 자신의 배짱과 운명 인생에 대해 확신을 가지라고 강조했다.

잡스에 이은 또하나의 신화적 인물이 탄생될 모양이다. 워런 버핏 벅셔 해서웨이 회장의 후계자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계 이민자 리루(李錄 · 44)가 그 주인공이다. 리루는 대학생이던 89년 6월 톈안먼(天安門) 시위에 참가했다 중국 당국에 쫓겨 미국으로 건너간 인물.

소문대로라면 스물세 살 운동권 대학생으로 미국땅을 밟은 지 21년 만에 1000억달러(약 120조원)를 주무르는 미국 최고 부자의 영예를 안게 되는 셈이다.

리루의 생애는 실로 드라마틱하다. 문화혁명 당시 부모가 광산으로 끌려가는 바람에 돌도 안돼 친척집에 맡겨졌다 10살 때 겨우 부모와 재회하지만 이번엔 24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탕산대지진을 겪었다. 컬럼비아대에서 경제학 · 경영학 · 법학 부문 학위를 받고 헤지펀드를 설립했지만 곧 아시아 금융위기가 터졌다.

운명의 신이 방향을 튼 건 2003년 후원자 중 한 사람이던 로널드 올슨 부부네 집에서 찰리 멍거 부회장을 만나면서부터.멍거를 통해 버핏에게 중국의 신생 배터리 제조회사 비야디(BYD)에 투자하도록 권유,2년 만에 6배의 수익을 올렸다.

리루의 성공엔 때마침 중국 경제가 급성장하는 등 운도 작용한 것처럼 보인다. 그가 소문대로 버핏의 후계자가 될지는 두고 봐야 한다. 그러나 분명한 건 무수한 고난에도 쓰러지지 않고 모두가 부러워하는 단계까지 왔다는 사실이다.

잡스처럼 리루도 '타고 났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한꺼번에 세 가지 학위를 딴 무서운 노력과 낯선 이국땅에서 후원자를 이끌어낸 친화력 없이 가능하진 않았을 것이다. 개천의 용은 없고 88만원 세대에겐 꿈도 사치라지만 지금도 문은 두드리면 열리고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