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적하고 널찍한 공간에서 쇼핑과 여가를 함께 즐길 수 있는 복합쇼핑몰의 등장과 발전은 자동차 보급률이나 국민소득 수준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복합몰은 넓은 면적을 요구하는 업태 성격상 초기에 입지 선정에 제약이 크지 않은 교외(郊外)지역에 주로 세워졌기 때문에 이동 수단으로 자동차가 필요했고,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여가를 제대로 즐기고 싶은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키며 성장해 왔기 때문이다.

몰(mall)의 효시는 1877년 이탈리아 밀라노의 엠마뉴엘 광장에 만들어진 대형 야외 시장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몰이 현대적인 유통 형태로 발전한 곳은 미국이다. 몰이 미국인들의 생활 속에 정착된 것은 1950년대 들어서다. 이 시기에 포드자동차가 저가 자동차를 쏟아내면서 가구당 자동차 보급률이 60%를 넘어섰고 교외로 이사한 미국 중류층들을 흡수하기 위해 지붕을 덮은 빌딩 형태의 몰들이 여기저기 생겨났다. 일본에서도 자동차 보급률이 60%를 넘어선 1970년대 들어 몰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미국과 일본의 1인당 국민소득이 각각 2만달러를 넘어선 1988년 이후 양국의 복합쇼핑몰은 전성기를 맞는다. 일본 롯폰기힐즈 등 도심에 호텔과 백화점,멀티플렉스,대형서점 등이 결합한 '랜드마크'형 복합타운과 미국 그로브몰처럼 마을을 몰로 바꾼 야외형 쇼핑몰 등이 크게 늘어났다. 복합 상업 시설이 몰 형태로 대형화하면서 나타난 소비트렌드가 바로 '몰링'(malling)이다. 몰링은 소비자들이 한 장소에 모여 있는 쇼핑 · 휴식 · 식당 · 오락시설을 돌아다니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말한다. 이와 함께 몰링을 즐기는 사람을 일컫는 '몰고어'(mall-goer)나 운동 삼아 널따란 몰을 여기저기 산책하는 '몰워커'(mall-walker)등 신조어도 등장했다.

최근 들어서는 일본과 홍콩,미국 등 복합쇼핑몰이 성숙기를 맞은 선진국에선 친환경이나 동양철학,전통미 등 특정한 컨셉트로 차별화한 문화를 만들어 가는 신개념의 몰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친환경을 테마로 한 일본 '이온 레이크타운'이나 중국 음양오행 사상을 전체 매장 구성과 인테리어에 접목한 홍콩 '엘리먼츠'몰,유럽풍 분위기로 새단장한 미국 '패션아일랜드'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 상황도 이와 비슷하다. 국내 복합쇼핑몰의 원조는 롯데그룹이 서울 잠실땅 18만㎡를 사들여 1988년 선보인 잠실 롯데월드다. 백화점과 호텔,초대형 놀이공원,아이스링크,민속박물관 등 쇼핑과 오락 · 레저 시설 결합은 최근의 대형 복합몰에 뒤지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로서는 복합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상업시설 간 통합적인 설계와 관리가 이뤄지지 않은 게 한계였다.

1990년대 들어 서울 동대문을 필두로 전국에 패션쇼핑몰을 표방한 분양형 상가건물들이 생겨났다. 대부분 부동산개발업체들이 분양수익을 노리고 지은 고층 건물 형태로,영화관이나 식당가 등을 갖췄지만 통로가 비좁은 데다 소비자를 끌어들일만한 핵심 테넌트나 휴식공간 등이 부족해 쇼핑몰이라기보다는 소규모 매장들이 밀집한 테마 상가 수준에 머물렀다.

현대적인 의미의 복합몰이 국내에 선보인 것은 자동차보급률이 60%에 도달한 2000년이다. 한국 복합쇼핑몰의 1세대라 할 수 있는 강남 '코엑스몰'과 '센트럴시티'가 나란히 등장했다. 2003년에는 스트리트형 몰 형태의 일산 '라페스타'가 선보였다. 국내에 '몰링'개념이 확산되기 시작한 것은 2006년 용산 민자역사인 '스페이스9'를 리뉴얼한 아이파크몰이 등장하면서부터다. 아이파크몰은 원래 분양형이었지만 공실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해 개발사인 현대산업개발이 일괄 위탁 임대 방식으로 상가를 복합몰 형태로 대대적으로 바꿨다. 김영민 아이파크몰 마케팅실장은 "당시 분양형 쇼핑몰,온라인몰 등과 차별화하기 위해 '몰링'을 전략적으로 홍보했다"며 "아이파크몰은 코엑스몰과 함께 국내에 몰링문화를 퍼뜨리는 전도사 역할을 해 왔다"고 강조했다.

국민소득 2만달러를 돌파한 2007년 이후 대형 복합쇼핑몰 건축 붐이 일어나고 '몰링' 바람이 더욱 거세졌다. 서울 왕십리 민자역사 '비트플렉스'와 신림역 '포도몰',경남 창원시의 '시티세븐몰' 등 임대 방식의 지역밀착형 복합몰이 잇따라 선보이고 지난해엔 부산 신세계센텀시티와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 등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춘 매머드급 복합몰이 개장하면서 본격적인 '몰링'시대를 열고 있다. 김민 신세계 유통산업연구소 팀장은 "외환위기 여파와 카드 유동성 위기로 시기가 좀 늦춰졌지만 주 5일 근무제 정착 등 소비환경 변화와 백화점의 복합몰화, 유통업체들의 건립 경쟁 등으로 복합쇼핑몰이 유통산업을 주도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