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터넷 펀드 동호회 사이트를 보면 온통 환매 얘기뿐이다. 원금을 까먹고 있던 펀드들이 이제 어느 정도 수익이 나면서 환매욕구가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펀드 환매가 증시 최대 고민으로 떠올랐다. 코스피 지수가 2년래 최고치를 기록하며 질주하는 와중에도 펀드 환매 물량은 끝없이 쏟아지고 있다.지수는 1800을 향해가는데 기관, 특히 투신권은 펀드환매에 밀려 주식을 내다파느라 정신이 없다.
◆ 6월 이후 펀드 줄환매
4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2일 기준으로 상장지수펀드(ETF)를 제외한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 18일째 자금이 빠져나갔다. 이 기간 3조원이 넘는 자금이 순유출됐다.
4일에도 기관은 2580억원을 순매도했으며, 이 중 투신은 2900억원을 팔았다. 이날 프로그램으로 1700억원의 자금이 들어온 것을 감안하면 기관이 내다판 물량은 이보다 많을 것으로 보인다.
기관들도 할 말은 있다. 펀드에서 돈이 빠져나가니 사고 싶어도 주식을 살 수가 없다는 거다.
한 펀드매니저는 "지금 기관이 주식을 파는 이유는 오직 펀드 환매 때문"이라며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을 보면 오히려 사야 할 때라고 보는데 살 돈이 없다"고 한탄했다.
그는 "기관이 펀드 환매 대금을 내주기 위해 갖고 있는 주식을 바스켓(포트폴리오)째로 내다파니 기관 비중이 큰 대형주가 흔들리며 시장에 부담이 되는 것"이라고 전했다.
최근 펀드런의 기세에는 증시 전문가들도 놀라는 형편이다.
한 애널리스트는 "코스피 1700대에서의 펀드 환매 물량은 대부분 소화됐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 이 지수대에서도 이렇게 많이 나올 줄은 예상 못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1700 부근에서 들어온 자금이 6조8000억원 정도인데 나간 자금은 7조3000억원 정도"라며 "1800 넘어서야 나올 거라고 생각했던 자금들도 선유출되는 것 같다"고 풀이했다.
◆ 환매 대기 물량 아직 많아
문제는 아직까지도 원금이 회복되기만을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는 물량이 만만치 않다는 거다.
특히 상대적으로 일찍 원금을 회복한 적립식 펀드 물량은 많이 소화된 반면, 거치식 펀드 물량은 이제 나오기 시작한 것으로 보여서 더욱 부담이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코스피 1800선 위에서 유입된 펀드 자금은 28조원 정도며, 이 중 절반 정도가 거치식 자금으로 추정되고 있다.
안정균 SK증권 펀드애널리스트는 "1800이상에서 유입된 거치식 자금만 10조원 이상으로 판단된다"며 "코스피 지수가 1800에 가까워지면서 이들 물량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김순영 IBK투자증권 펀드애널리스트는 "금융위기 이후 펀드도 손해가 날 수도 있다는 것을 경험한 투자자들이 어느 정도 수익을 실현하면 바로 환매에 나서고 있다"며 "지수가 오를 때마다 단계적으로 환매 물량이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코스피 지수가 저점을 높여가면서 펀드 자금 유입 지수대가 조금씩 높아지고 있는 것은 긍정적으로 보인다.
지난해에는 코스피 1600 밑에서야 주식형 펀드로 자금이 유입됐지만, 올해 들어서는 1700 수준까지 자금 유입대가 높아진 상태다.
안정균 펀드애널리스트는 "자금 유입구간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은 펀드 투자자들의 투자심리가 개선되고 있으며 하방경직성을 확보했다는 뜻"이라며 "2년 넘게 기다렸던 펀드 악성매물이 빠져나가고 나면 증시가 큰 상승탄력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한경닷컴 김다운 기자 kd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