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미국 항공우주국은 17억달러를 들여 만든 허블우주망원경을 우주 궤도에 올려놓았지만 1993년 비싼 돈을 들여 우주 상공에서 수리해야 했다. 주 반사경 광학계의 구면수차(球面收差)라는 결함 때문이었다. 반사경 제작 기준을 정하는 영점 보정계를 '사람'이 잘못 잡았던 게 원인이었다.

이에 대해 《장인》의 저자는 "장인의 운명이 바로 이렇게 끝날 거라고 믿지 않는다"며 인간의 사회활동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일과 노동을 들여다본다. 일 자체와 일을 훌륭히 해내려는 욕망을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로 파악하는 저자는 인간이 일하는 모습을 조명하고자 광활한 시공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상고시대의 그리스 도공,로마제국의 이름 없는 벽돌공,거대한 성당을 지어 올렸던 중세 석공,르네상스 예술가를 비롯해 근대의 노동자,리눅스 프로그래머 · 건축가 · 의사 등 현대의 전문 직종에 이르기까지 일하는 장인의 모습을 펼쳐 보이며 장인과 장인의식,실기(craft)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고전시대 문명이 출발할 때부터 장인들은 학대를 받아왔다. 그들이 인간으로 산 것은 일에 대한 신념이며,작업할 물건과 마주하는 열의와 관심이다. 장인에 관한 저자의 설명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사물 없이는 관념도 없다"고 선언했던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의 말이 적합할 것이다.

'실기'편에서는 기술과 인간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탐구한다. 임마누엘 칸트는 "손은 마음에 이르는 창문"이라고 말했다. 사랑이나 일은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도중에 이루어진다. 그 과정에서 더 단련되고 일을 잘할 수 있게 된다. 도구를 사용하다 보면 일을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 16세기에 칼 제조용 금속재료를 정밀하게 혼합했던 일이 나중에 덜 고통스러운 외과수술을 열어줄 것이라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일반적으로 장인의식은 어떤 일을 하든 일 자체를 위해 완벽하게 해내려는 욕구를 뜻한다. 경영학에서는 장인정신으로 특정업무에 몰입하는 것을 발톱이 살 속으로 파고드는 것에 비유해 '외곬'이라고 묘사한다. 어떤 분야든 장인정신은 고도로 숙달된 기능에 바탕한다. 공통적으로 쓰이는 장인의 척도가 있는데 마스터 목공이나 마스터 연주자의 기량에 도달하려면 1만 시간가량의 실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장인의 삶은 인간의 완성과도 닿아있다. 부처는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하는 수행법의 하나로 정진(精進)을 중시했다. 정진이란 열심히 일하는 것,한 눈 팔지 않고 눈앞의 일에 몰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그룹 명예회장은 "하루하루 열심히 일하는 것이 중요하며,일에 대한 정진은 마음과 인격을 연마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불과 대장간의 신 헤파이스토스는 절름발이일지라도 자신의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헤파이스토스는 올림포스 신들 중 최고의 손재주를 지녔다. 자신의 손재주를 이용해 신들의 화려한 장비들을 만들어 주었다. 이 책은 타인을 위해 묵묵히 자신의 재주를 나누는 헤파이스토스를 통해 우리 자신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존엄한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강경태 한국CEO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