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당신이 먹는 치킨ㆍ삼겹살이 도시의 몰락을 부른다?
신문과 방송,인터넷 등 매체마다 음식 프로그램이 넘쳐나는 건 한국만이 아니다. 미국,영국,프랑스,일본 등 전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유명 요리가의 요리강습과 이른바 '맛집'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꼬리를 문다. 인류사상 '먹는 문제'에 대한 관심이 이토록 큰 적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2005년 성탄절 연휴를 앞둔 어느날 영국의 텔레비전 채널 두 곳이 성탄절 음식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동시에 방송했다. BBC2는 품질 좋은 지역 농산물을 재료로 쓰는 인기 요리사가 최상의 훈제연어와 칠면조 등을 구하러 전국을 누비는 모습을 1시간 동안 보여줬다.

같은 시간 채널4는 '선'지의 기자가 폴란드의 한 가축농장을 몰래 촬영해 성탄절 음식의 재료가 생산되는 끔찍한 광경을 고발했다. 몸을 돌릴 수 없을 정도로 비좁은 우리에 갇힌 암퇘지들과 햇볕도 들지 않는 헛간에 가득 들어차 발을 절뚝이는 칠면조들,해부한 결과 애처로울 정도로 가느다란 뼈와 피가 날 정도로 부은 칠면조의 간,컨베이어벨트를 따라 가며 가혹한 죽음을 맞는 칠면조들….

이렇게 '생산된' 동물 고기들은 농축산물 직판장이나 전문음식점,화려한 식당으로 실려가 성탄 축하 요리로 변신한다. 품질 좋은 유기농 식품으로 모든 사람들이 성탄절을 즐겼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 도시 인구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현재만 해도 전 세계 식량과 에너지의 75%를 소비하고 있는 도시는 앞으로 머지 않은 장래에 30억명의 인구를 더 수용해야 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개발도상국의 도시화가 가속화하면서 도시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 것이기 때문이다.

《음식,도시의 운명을 가르다》의 저자는 고대 근동으로부터 유럽,미국,중국에 이르기까지 음식을 통해 나타나는 도시 문명의 확산 경로를 추적한다. 아울러 음식이 땅과 바다에서 도시로,시장과 슈퍼마켓을 거쳐 주방과 식탁,쓰레기장,그리고 땅과 바다로 돌아가는 과정을 종횡으로 엮어 도시의 운명은 바로 도시 혹은 도시 사람들이 먹는 것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책마을] 당신이 먹는 치킨ㆍ삼겹살이 도시의 몰락을 부른다?

음식은 고대로부터 줄곧 도시의 운명을 결정해왔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뛰어난 관개시설로 문명의 꽃을 피웠던 수메르의 도시들은 토양 고갈로 인한 영양실조로 막을 내렸다. 로마는 제국의 식욕을 충족하기 위해 확장을 거듭하다 결국 내부로부터 파멸했다. 프랑스의 구체제는 곡물경찰을 통해 프랑스 전역의 식량을 무리하게 파리 중심으로 통제하려다 민심을 잃고 프랑스대혁명으로 무너졌다.

지금은 어떤가. 산업혁명 이후 전 세계의 육류소비량은 급증했다. 영국의 육류소비는 1870년 이후 20년간 3배나 증가했고 이를 위해 미국에서 수입한 사료로 영국,덴마크,네덜란드에 돼지와 닭을 공장형으로 사육하는 농장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미국은 곡물의 대량생산과 육류가공법 개발로 전 세계 노동자들에게 싼값의 육류를 공급했다.

덕분에 전 세계의 육류소비량은 1인당 연간 124㎏을 먹어치우는 미국을 필두로 날로 증가하고 있다. 2030년에는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육류와 우유의 3분의 2가 개발도상국에서 소비될 것이며,2050년에는 육류소비량이 현재의 두 배가 될 것이라고 유엔은 전망한다. 중국의 경우 1인당 연간 고기소비량이 1962년 4㎏에서 2005년 60㎏으로 급증했다. 앞으로 25년 후 중국의 도시 인구가 4억명으로 늘어나면 육류 수요는 폭증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고기 생산에 필요한 환경비용이다. 고기 생산을 위해 전 세계 농작물의 3분의 1이 동물에게 공급되고 있다. 소 한 마리를 키우려면 사람 한 명이 먹는 곡물의 11배가 필요하다. 쇠고기 1㎏을 생산하는 데 드는 물의 양은 보리 1㎏을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물의 1000배나 된다.

저자는 땅과 도시,시장과 슈퍼마켓,주방과 식탁 등 음식이 이동하는 경로를 따라가며 현재와 같은 음식문화가 머지않아 도시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아울러 쿠바의 도시농업 시스템인 오르가노포니코를 비롯해 오스트리아 하수농장,지역식품망을 강화하고 주민들에게 요리와 채소재배 기술을 교육하며 도시 내 채소밭을 더 많이 확보하는 아일랜드의 '에너지 감소 사업계획' 등 성공적으로 자리잡은 각국의 사례들을 소개한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