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는 한국의 의료보험 제도가 비교적 우수하다고 평가했다. 1977년 첫 도입 이후 12년 만에 전 국민 의료보험 시대를 열었기 때문이다. 짧은 기간에 모든 국민에 대해 건강보험을 실시하기 위해서는 국민 부담을 최소화하고 혜택(급여)을 제한할 수밖에 없었다고 OECD는 분석했다. 부담이 적은 만큼 혜택도 적은 체제라는 것이다.

OECD는 한국 정부가 부담 경감을 위해 의료비 상승도 억제시켜 왔다고 설명했다. 병원이 예외없이 모든 환자를 받아야 하는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등의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재정을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정부 지원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현행 체제가 유지되기 힘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급속히 진행되는 고령화 등의 영향으로 의료비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정부 지원에도 불구하고 건강보험 재정이 악화되고 있다.

2007년 7월 지역과 직장 의료보험을 통합해 출범한 건강보험은 2001년과 2002년 각각 2조4088억원과 7607억원의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다. 보험료가 잘 걷히지 않았던 지역 의료보험의 적자를 메워야 하는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다. 이후 담배에 건강증진기금을 부과하는 등의 노력으로 건강보험 재정은 유지돼 왔지만 지난해부터 또다시 위기를 맞고 있다.

건강보험 재정은 작년에 32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올 상반기에는 2568억원의 흑자를 기록했지만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 1~5월 사이 3981억원의 누적 흑자를 냈지만 6월에는 1413억원의 적자로 돌아섰다. 지난달을 포함해 연말까지 매월 1000억~2000억원의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건강보험공단은 예상하고 있다.

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상반기 흑자는 국고지원금의 조기 수납 등으로 8000억원가량이 미리 들어왔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며 "사실상의 적자 추이는 작년부터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6월 보험급여비 지급액이 2조9030억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것에서 볼 수 있듯 의료비는 이미 걷잡을 수 없이 증가하고 있다. 건강보험공단이 지난 3월부터 비상경영 체제를 선언하고 부당이득금 환수 등으로 적자 줄이기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올해 적자 규모는 조단위에 이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변동폭이 커서 예상하기는 어렵지만 보장성 강화 등까지 겹치면서 작년까지 쌓아온 누적 흑자 2조2586억원의 상당 부분을 올해 까먹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건강보험공단은 별다른 대책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건강보험제도 존립이 위협받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