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상생 경영'] 삼성‥삼성전자 "협력사를 세계적 기업으로" 파트너십 업그레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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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이사 부회장 직속
상생협력실 만들어…
자금ㆍ기술 지원은 물론
경영관리 기법까지 전수
상생협력실 만들어…
자금ㆍ기술 지원은 물론
경영관리 기법까지 전수
지난 2003년 여름 어느날.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직원들은 대회의실로 모이라는 지시를 받았다. 영문도 모르고 직원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회의실 자리가 거의 다 차자 회의실 불이 꺼졌다. 그리고 대형화면에 한편의 영상이 상영되기 시작했다.
삼성전자의 한 협력업체 모습이 나온다. 부품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산만한 모습을 카메라가 비춘다. 이어 이 협력업체를 담당하고 있는 삼성전자 직원이 들어선다. 협력업체 직원들의 얼굴에는 순간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한다. 삼성 직원은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 보이는 협력업체 담당자를 상대로 계속 반말투로 얘기를 주고 받는다.
영상은 협력업체 대표의 인터뷰로 바뀐다. 대표는 "삼성전자가 여러가지로 협력회사를 지원하고 있고 잘하는 직원도 많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파트너라는 인식이 부족한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 느낌은 원망으로 이어진다. "삼성직원들은 전체적으로 차갑죠.매사 확실하게 처리하는 것도 좋은데 너무하다 싶을때도 많아요. 2000년대 들어 엄청난 성과를 거두면서 더 심해진 것 같아요. "
협력업체 대표의 인터뷰는 "삼성전자가 최대성과를 내는데는 협력회사 직원들의 피땀어린 노력도 있는 것 아닙니까"라는 말로 끝났다.
영상을 보는 삼성전자 일반 직원들의 머릿속에는 "앞으로 뭔가 터지겠구나"라고 느낌이 스쳐갔다. 수원사업장에 화제가 됐던 이 영상은 협력회사 경영진단 결과물 가운데 하나였다. 당시 윤종용 부회장은 협력업체의 상황과 현장상황 파악을 지시했었다.
이 영상은 삼성전자가 본격적인 상생협력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스템을 통한 상생협력
삼성전자는 2003년 말 대대적인 협력회사 지원책을 발표한다. 우선 구매전략팀내에 협력회사 지원그룹을 신설키로 했다. 인원은 40여명으로 구성했다. 내부조직을 강화함으로써 협력회사 지원의 체계와 책임을 분명히하고자 한 것이다.
이 조직은 이후 상생협력실로 발전하게 된다. 역할은 각 사업부의 구매그룹을 총괄하는 것이었다. 또 향후 5년간 협력회사 기술직원을 위한 펀드 1조원을 조성하고 협력회사를 상생협력의 동반자로 인식하는 제도와 문화를 만든다는 것이 당시 발표의 주요 내용이었다.
그리고 2008년 5월 삼성전자는 구매 지원그룹을 확대 개편해 대표이사 부회장 직속으로 상생협력실을 만들었다. 지원그룹의 목표는 제품 경쟁력과 직결되는 협력회사의 공장 선진화를 위해 자금 지원,인력 육성,기술 지원 등을 하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상생협력 기반을 조성하겠다는 취지였다. 이에비해 상생협력실의 목표는 더욱 높아졌다. 즉 상생협력의 기반조성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협력사가 세계적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것으로 정해졌다.
실천과제도 제시됐다. 우선 품질, 원가, 기술 경쟁력 강화를 위한 지원을 물론 경영관리 기법까지 포함하는 종합적인 지원체계를 갖추기로 했다. 보이지 않는 인프라웨어까지 지원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삼성전자와 실시간으로 거래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ERP(전사적 자원관리) 시스템 구축을 지원하거나 SCM(공급망 관리) 수준을 높여주는 활동이 대표적이다.
중소기업이 하기 어려운 인재육성에도 초점을 맞췄다. 교육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은 협력회사의 임직원을 대상으로 미래경영자 양성 및 직무전문가(GVE, 6시그마, ERP, 제조, 품질 등) 과정 등 30여개 과정의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최근에는 협력사가 아닌 우수 중소기업에도 납품 기회를 주는 오픈 이노베이션 체제를 도입했다. 이를 통해 새로운 유망 중소기업 발굴은 물론 이들과의 협력을 통해 제품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성과내는 사업들
상생협력실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협력회사가 높은 기술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핵심 부품 및 반도체 설비 등에 대한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해 협력회사와 공동으로 국산화를 추진했다.
대표적인 성과는 반도체 원료인 웨이퍼 특수가공 장비 애셔(Asher)다. 국내 협력회사인 PSK가 삼성전자와 함께 이를 국산화하는데 성공했을뿐 아니라 글로벌 점유율 1위를 달성하는 개가를 올리기도 했다.
새로운 공법이나 선행기술 개발을 위한 협업도 중요과제다. 협력회사가 취약기술을 보완하고 선행기술을 도입할 수 있도록 기술과 인력을 지원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성과물이 와이브로 상용기술 개발이다. 협력업체 및 정부,국책연구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4세대 이동통신의 국제 표준화 및 차세대 통신 기술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또 삼성전자 TV 디자인을 한단계 끌어오리며 세계시장 1위를 굳건히 할수 있게 해준 ToC (Touch of Color) 기술도 대표적인 협력의 결과물이다. 신흥정밀 세화전자 대덕전자부품 등 7개 사출 협력회사와 에이테크솔루션,영신공업사,제일정공 등 3개 금형 협력회사와의 협력을 통해 삼성전자는 이중사출이라는 획기적인 기술을 개발했다. LCD TV 업계 최초 이중사출 프레임 개발을 통해 다색, 투명, 고품격 외관을 구현한 것이다. 이 사례는 사출 금형 등 사양산업에 속했던 '과거의 산업'을 첨단업종으로 탈바꿈 시켰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이건희의 구매 예술론
삼성전자 상생협력의 시작은 지난 19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건희 회장은 취임 1년이 지났을 즈음 협력업체 대표들을 삼성전자 본관으로 초청했다. 이 자리에서 이 회장은 한 협력업체 대표에게 "우리회사에 오시면 주차는 어디에 하십니까"라고 물었다. 협력업체 대표는 "그냥 잘 하고 있습니다"라고 얼버무렸다. 이 회장은 "협력업체 사장님들이 삼성에 들어오면 삼성 사장 차 옆에 주차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움직임을 이해하려면 이분들이 개발실까지도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협력업체와 한몸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삼성전자는 그해 11월 협력업체 외주확대 및 지원방안 3개년 방안을 발표한다.
또 이건희 회장은 신경영을 시작한 1993년 "구매를 예술의 경지까지 끌어올려야 한다"며 상생협력론을 구매 예술론으로 발전시켰다.
삼성전자는 사상 최대 이익을 거두고 있는 요즘 구매예술론,상생협력실 조직의 전통을 기반으로 새로운 상생협력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