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무사고 운전자였던 회사원 박모씨(51)는 지난 6월 처음 접촉사고를 냈다. 차를 몰고 퇴근하던 중 이동멀티미디어방송(DMB)을 통해 월드컵축구 생중계를 보다 한박자 늦게 브레이크를 밟아 앞차를 추돌했다. 박씨는 이후 DMB 단말기를 아예 차에서 떼버렸다.

첨단 정보기술(IT)이 도로 위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휴대폰이나 차 안에 설치된 DMB가 운전자들의 주의를 산만하게 만들어 사고 발생을 부추기고 있다. 전문가들은 "운전석에서 잠시 한눈을 팔면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의 생명까지 빼앗는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며 "운전 중 휴대폰을 사용하거나 DMB를 보는 게 만취운전보다 치명적"이라고 경고한다.

실제로 휴대폰 통화나 라디오 조작 등으로 운전자 주의가 분산돼 발생한 교통사고는 최근 3년 동안 9922건에 달했다. 이 가운데 220명이 숨졌고 1만6145명이 다쳤다. 작년 한 해에만 3008건이 발생해 75명이 목숨을 잃고 4995명이 부상했다.

운전 중 휴대폰을 사용하다 경찰에 단속되거나 계도장을 받은 운전자도 해마다 늘고 있다. 2006년 11만1184명에서 작년 25만4396명으로 두 배 이상 급증했다.

운전 중 DMB를 사용할 경우 소주 한 병을 마시고 음주운전을 할 때보다 사고 위험이 더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가 올 4월 실시한 실험에 따르면 운전 중 DMB 단말기를 조작할 때 평균 6초가 소요되는데 이는 시속 70㎞로 주행하면서 전방을 주시하지 않은 채 118m를 달리는 상황과 같았다.

6㎞ 구간의 편도 2차로를 정상 상태에서 주행한 운전자의 전방 주시율은 76.5%.하지만 DMB 시청자의 주시율은 50.3%에 불과하다. 이는 혈중 알코올 농도 0.05%(면허 정지 기준)나 0.10%(면허 취소 기준) 상태에서의 전방주시율(각각 76.0%,72.0%)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DMB 시청이 취중운전보다도 사고 위험이 더 높다는 얘기다.

경찰에 따르면 운전 중 DMB를 조작하거나 시청하다 일어난 사고는 매년 꾸준히 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상반기까지 국내에 보급된 차량용 DMB는 607만대.전체 등록 차량 대수(약 1700만대)의 3분의 1을 넘는다.

그러나 DMB 때문에 일어난 사고 통계는 없다. 단속 규정이 없어서다. 운전 중 DMB 시청을 금지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작년 5월 국회에 제출됐지만 아직 통과되지 않고 있다.

교통 선진국에서는 DMB 시청이나 내비게이션 시스템 조작 등 안전운전을 방해할 수 있는 행위를 포괄적으로 규제한다. 일본은 2004년 '차량에 부착된 화상(畵像)표시용 장치를 주시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을 도로교통법에 도입했다. 위반하면 벌점 1점과 2000~7000엔의 벌금에 처한다.

영국은 화상장치를 사용하는 것은 물론 △시끄러운 음악을 듣는 행위 △음식물 섭취 △지도 보기 △라디오나 CD 조작 △동승한 사람과의 논쟁 등 운전자의 주의력을 흐트러뜨리는 사소한 행동도 피하라고 규정하고 있다. 미국은 워싱턴DC를 포함한 38개 주에서 운전자의 안전운전에 장애를 주는 TV 등 화상용 표시장치 설치 금지를 명문화했다. 싱가포르는 운전 중 휴대폰을 사용하다 적발되면 징역 6월 또는 1000싱가포르달러(약 86만2000원)까지 벌금을 부과한다.

강동균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