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컸다"…글로벌시장서 '한국기업 견제' 확산
인도 세무당국이 삼성전자 LG전자 등 현지 한국법인을 겨냥해 대대적인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이달 말까지 영업흐름,한국 본사에 관한 정보,본사와의 거래 규모,이전 가격의 산출 근거 등을 제출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6월 중순엔 브라질 연방 세무국이 자동차산업협회(Anfavea)의 요청을 받아들여 현대 · 기아자동차 등 한국 자동차업체에 대해 세무조사를 시작했다.

글로벌 시장에 '한국 경계령'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발(發) 금융위기의 '승자'로 부상한 한국기업들이 곳곳에서 노골적으로 견제를 받고 있다. 업계도 마찬가지 양상이다. 대만과 일본은 'IT(정보통신) 맹주' 한국을 잡기 위해 연합 전선을 펼치고 있고,한국의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주는 프랑스,일본,미국 등 기존 강자들이 동맹을 맺도록 촉발시켰다.

◆한국기업 대상 세무조사

9일 KOTRA 인도 KBC에 따르면 인도 세무당국은 지난달 말부터 전체 외국 기업을 대상으로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한국 기업의 인도 가전 시장 점유율이 50%를 웃돌고,현대 · 기아차도 자동차 시장에서 2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 기업이 주 타깃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전언이다.

세무 조사는 지난 6월 말에도 있었지만 당시엔 외국 투자 기업에 근무하는 현지 근로자들을 조사하는 데 그쳤다. 이번에 인도 정부는 조사 착수일로부터 520일 이내에 세액추징 내역서를 통보하겠다고 밝히는 등 의례적인 조사가 아님을 분명히 했다. 브라질에선 아예 한국산을 겨냥한 세무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올 1~5월 한국산 자동차의 성장률이 전년 동기 대비 3배로 전체 평균인 75%를 훨씬 웃돌자 수입 가격과 관련해 세무 당국이 조사에 나선 것.한국 본사와 브라질 판매법인 간 이전가격 조사를 통해 상당액의 세금을 추징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포스코의 경우엔 '그린 장벽'에 막혀 인도 일관제철소 프로젝트가 좌절될 위기에 놓였다. AFP 등 외신에 따르면 인도 중앙정부는 환경보호를 위해 지난 6일(현지시간) 포스코가 추진중인 오리사주 제철소 부지 매입과 보상 협의를 잠정 중단하라고 주정부에 지시했다.

◆강자들의 한국 경계령

한국 기업을 겨냥한 글로벌 강자들 간 합종연횡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대만과 일본의 연합이 대표적인 사례다. 일본 엘피다와 대만 프로모스 등이 D램 공동생산을 시작했고,지난달엔 도시바와 TCL이 중국에 평면TV 판매 회사를 설립키로 했다. 이런 방식으로 일본-대만 간 합작을 통해 중국에 진출한 기업수는 415개(작년 6월 기준)에 달한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일본의 기술력과 대만의 제조능력을 결합해 삼성과 LG를 투톱으로 하고 있는 한국의 시장 장악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새로운 '달러 박스'로 부상한 원전 시장도 마찬가지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한국이 UAE 원전을 수주한 데 자극받아 미쓰비시중공업은 프랑스의 아레바와 제휴를 맺었다"며 "한국이 고립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후지쓰와 마이크로소프트사가 클라우드 컴퓨팅 분야에서,도요타와 테슬라모터스(미국)가 전기자동차를 공동 개발키로 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만만치 않은 수출 환경

양은영 KOTRA 통상전략팀 차장은 "미국,유럽,일본,중국 등 글로벌 강자들의 공세가 거세지면서 하반기 한국의 수출 환경은 상반기에 비해 악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미국이 최근 정부 차원에서 수출 전담 기구를 만들고,유럽이 유로화 약세를 계기로 수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글로벌 인수 · 합병(M&A) 시장의 큰 손으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의 움직임도 위협적인 요인이다. 최근 영국경제연구소는 중국의 전방위 해외 기업 사냥을 '역(逆)마르코폴로 현상'이라고 부르며,중국의 기술 수준이 조만간 급성장할 것임을 시사했다. 중국의 추격에 따른 한국 기업의 피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는 필리핀 전력 발전 시장이다. 작년 초 필리핀 전력청이 송 · 변전을 담당하는 자회사를 민영화,중국을 1대 주주로 유치하면서 한국 회사들은 2008년 4월 현대엔지니어링의 3200만달러짜리 프로젝트 수주 이후 9일 현재까지 단 한 건의 실적도 못 올리고 있다. 기존 강자들 역시 호시탐탐 역습을 노리고 있다. 예컨대 소니는 인도 가전 시장에서 한국의 10년 아성을 깨기 위해 고가 전략을 과감히 버렸다. 작년만 해도 삼성,LG제품과의 가격차가 20%에 달했으나 올해 3.4% 차이로 줄였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