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회사 출신의 A씨는 지인에게 투자자를 모아달라고 부탁해 B씨 등을 소개받았다. A씨는 B씨 등에게 자신에게 돈을 맡기면 10%의 확정 수익을 보장한다고 제의했다. 대신 10% 이상의 수익이 나면 그 부분의 절반은 자신이 '자문료'로 받는 조건이었다.

제안을 받아들인 B씨 등은 A씨가 지목하는 코스닥 상장사 주식에 4억5000만원을 투자했다. 약속한 기간이 만료됐고 2억원이 넘는 투자수익이 발생했지만 B씨 등은 막상 A씨에게 1억여원을 자문료 명목으로 주는 것이 아까웠다. 이들은 "증권거래법상 원금보장 약정은 무효"라며 약정했던 수수료를 못 주겠다고 버텼다.

주식 시세차익으로 돈을 벌게 해줬는데도 B씨가 약속을 어기자 A씨는 소송을 내 1심에서 승소했다. 그러나 2심에서는 A씨의 청구가 기각됐다. 서울고법은 "이 투자약정은 증권회사와 고객 사이가 아닌 일반인 사이에 체결된 것이지만 증권거래법상 수익보장 등 금지 원칙을 유추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A씨와 B씨의 약정을 무효라고 봤다. 법원은 또 "수익보장 약정을 한다면 이를 이행하기 위한 불법 · 변칙적인 거래로 증권시장의 공정한 거래질서에 왜곡을 가져올 위험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A씨는 대법원에 상고했고 대법원은 지난달 22일 "증권거래법상 증권회사와 고객 사이의 수익보장 금지 원칙을 일반인들 사이의 이 사건에 적용해 약정을 무효로 하기는 어렵다"며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증권회사와 임직원이 한 수익보장 약정의 효력을 부인하는 것은 이들이 증권시장에서 주식 가격이 공정하게 형성되도록 노력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증권회사 직원과 고객 간의 수익보장 약정은 법규정에 위반돼 무효이기 때문에 어느 쪽도 계약을 근거로 약정금 등을 청구할 수 없다는 것이 법원의 입장이다. 그렇지만 이번 사건에서 대법원은 수익보장 약정 금지 원칙이 일반인 간 계약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법리를 밝히며 A씨의 약정금 청구를 인용했다.

한편 B씨는 수익보장 약정이 무효라고 주장하는 이외에도 A씨의 주식 시세조종 의혹을 제기했다. 반대로 A씨는 투자자들이 불과 한 달여 기간에 10%를 훨씬 넘는 수익을 노리고 투자했고 실제 이들이 수익을 얻었다고 주장했다. 양측의 싸움에 대해 법원은 결국 약속을 지키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린 셈이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