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컨디션이 최상은 아닙니다. 이번에 우승하면 좋겠지만 특정대회를 찍어서 우승하겠다고 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다행히 바닥은 벗어났기 때문에 하반기에 좋은 소식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

양용은(38 · 사진)의 목소리는 한결같았다. '무명'이던 지난해 이맘 때나 메이저챔피언으로 타이틀 방어에 나서는 지금이나 큰 변화 없이 차분했다. 그것이 그의 장점인지도 모른다.

1년 전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35 · 미국)를 꺾고 아시아 남자골프사상 최초의 메이저대회 챔피언이 된 양용은은 브리지스톤 인비테이셔널이 끝나자마자 USPGA챔피언십이 열리는 미국 위스콘신주 콜러의 위슬링 스트레이츠코스로 갔다.

그러나 최근 4개 대회 성적(커트탈락-커트탈락-60위-46위)에서 보듯 절정의 기량은 아니다. "대회 2연패가 말처럼 쉬운 것이라면 언제나 자신 있다고 하고 싶지만 지난해 첫 메이저 타이틀을 딴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듯이 한 대회를 지목해서 우승하겠다고 하는 것은 더더욱 힘든 일입니다.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은 하겠습니다. "

양용은에게 지난해와 올해 대회는 천양지차다. '디펜딩 챔피언'에 대한 언론의 관심,동료들의 태도,USPGA의 대접 등이 100% 달라졌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일단 대회와 관련된 모든 배포물에 제 사진이 실립니다. '2009년 챔피언'이라는 표지판과 함께 제 전용 주차공간도 마련됩니다. 평생 동안 이 대회에 출전할 수 있고요. 또 중계방송에 많이 노출되도록 유리한 시간대에 톱랭커들과 조편성이 됩니다. 올해 타이거 우즈와 같은 조로 편성한 것도 예우라고 할 수 있지요. 무엇보다 '메이저 챔피언'에 대한 동료들과 팬들의 존중이 아닐까요? 일반 대회에서 아무리 많이 우승해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

양용은은 1,2라운드에서 우즈,비제이 싱과 함께 플레이한다. 우즈는 이 대회에서 네 차례(1999,2000,2006,2007년),싱은 두 차례(1999,2004년) 우승했다. 만만치 않은 상대들이다. 우즈는 지난해 처음으로 메이저대회 마지막 날 양용은에게 역전패를 당했다. 올해 양용은-우즈의 초반 맞대결이 더 주목되는 이유다.

"우즈와 동반플레이를 하는 것이 긴장되긴 하지만 담대하게 임할 겁니다. 우즈나 저나 상대방에 대해 신경 쓰는 일은 소모적이라고 생각하며 그럴 일도 없을 것입니다. 그는 슬럼프에서 벗어나는 게 급선무일 것이고,저도 부진 탈출과 디펜딩 챔피언으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게 먼저입니다. "

양용은다운 말이다. 지난해처럼 동반플레이어에게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게임에 몰두하겠다는 각오다. 내친 김에 우즈의 부진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도 사람입니다. 주변의 시선,매스컴과 골프계의 지나친 관심으로 지난 1년간 힘들지 않았을까요. 게다가 몸 컨디션도 완벽하지 않은 듯하지요,필 미켈슨은 바짝 추격해오지요. 그의 부진은 심리적 요인 때문이라고 봅니다. "

라이벌인 우즈와 미켈슨은 0.44점차로 세계랭킹 1,2위를 달리고 있다. 미켈슨이 이번 대회에서 5위 안에 들고 우즈가 하위권으로 처지면 랭킹이 뒤바뀔 수도 있다. 그러나 양용은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물론 우즈가 심리적 · 육체적으로 위축돼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타이거는 역시 타이거다. 그의 플레이만 보면 그래도 가장 완벽한 선수다. 여기에 집중력 또한 세계 최고다. 그가 쉽사리 1위 자리를 내줄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위슬링 스트레이츠코스는 미시간호수 옆에 있다. 18홀 벙커 수는 967개로 전 세계 골프코스 가운데 가장 많다. 연습라운드를 해 본 양용은은 "코스 자체도 어렵지만 바람의 세기나 방향,날씨가 큰 변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바다 같은 호수를 끼고 있기 때문에 페블비치GL처럼 궂은 날씨가 예상되는가 하면 화창하면서 바람 없는 날도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는 "오전과 오후 날씨가 전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티오프시간도 승부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USPGA챔피언십도 마스터스를 본떠 대회 이틀 전 '챔피언스 디너'를 연다. 디펜딩 챔피언이 역대 챔피언,PGA 임원들을 초청해 베푸는 만찬이다. 올해 호스트는 양용은이다. 양용은은 그래서 한식으로 메뉴를 정했다. 여기에는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의 도움이 컸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죠.메뉴는 불고기 · 쌈을 위주로 한 가정식으로 할 것입니다. "

김경수 기자 ksm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