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느냐 마느냐." 가을 밀 파종을 앞둔 미국 농가들이 고민에 빠졌다. 재배면적을 늘릴지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어서다. 10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밀 재배 농가들이 향후 수주 내로 밀을 더 심을지 결정해야 하는 '결단의 시기'에 직면해 있다고 보도했다.

판단은 어렵다. 변덕스러운 날씨와 세계 각국 주요 생산자들의 동향 등 향후 밀 재배면적을 결정할 변수들이 어느 때보다도 복잡하게 굴러가고 있는 탓이다. 무엇보다 생산 경쟁자들의 재배면적 확대 여부가 관건이다. 캐나다 호주 등 주요 생산국에서 가격 상승에 베팅해 밀 재배면적을 대폭 늘릴 경우 내년도 밀 가격이 폭락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에탄올 생산용 곡물 수요가 늘자 밀 경작지를 옥수수 재배지로 바꾼 미국 내 경쟁 농가들이 다시 밀 재배로 유턴할 조짐을 보이는 것도 변수다.

일단 올해 생산량은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이날 AFP통신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는 "극심한 가뭄 탓에 올해 러시아 곡물 생산량이 약 6000만~6500만t에 그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9700만t에 비해 35% 감소한 수치다. 이달 초 옐레나 스크리니크 농업장관이 올해 수확 예상량을 7500만t으로 낮춘 지 일주일 만에 또 낮춘 것이다.

밀과 보리의 주요 수출국인 호주 정부도 올 겨울 작황이 나쁠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냈다. 메뚜기 부화 개체 수가 워낙 많아 대규모 농작물 피해가 예상된다는 이유에서다.

쌀 수확량도 앞으로 계속 줄어들 것이란 관측이 나와 있다. BBC는 미국 농업전문가의 보고서를 인용해 "지구 온난화로 단위면적당 쌀 생산량이 갈수록 줄어들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하지만 내년도 전 세계 밀 작황은 앞으로 몇 주일 동안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흑해 주변 국가에 1~2인치의 강우량만 있어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게 미국 농가들의 고민이다. 2008년 식량폭동 등 지구촌 곳곳이 홍역을 치렀던 애그플레이션 이후 식량 비축에 나선 주요 소비국가들의 재고량도 밀 가격의 향배를 결정지을 변수다. 알 인디아 곡물그룹에 따르면 인도에는 최대 5400만t의 밀 재고가 있다. 미국(3000만t)의 두 배에 육박하는 비축 물량이다.

미국 MF글로벌의 원자재 트레이더인 리치 펠츠는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 농가들은 앞으로 불완전한 정보로 고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