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램값 급락에도 삼성은 공급확대…반도체 또 '치킨게임'
일요일인 지난 8일 서울 용산 전자상가 매장에는 D램 모듈 신제품 가격이 중고제품보다 싸게 책정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삼성전자 DDR2 2기가바이트(GB) D램 모듈 신제품 가격은 4만8000원인 반면 중고제품은 5만원 선이었던 것.신제품 가격이 가파르게 떨어지는 과정에서 미처 중고제품 가격을 조정할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6일까지만 해도 5만1000원대에 거래되던 신제품 가격은 불과 며칠 만에 3000원이나 급락했다. 용산 전자상가에는 새로 나온 게임 스타크래프트2를 즐기기 위해 PC 메모리를 업그레이드하려는 수요가 늘어나고 있지만 향후 가격이 더 떨어질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생겨나면서 구매를 미루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현물가격이 고정거래가격 이례적 추월


D램 현물 가격은 지난 4월 대비 20~30%가량 가파르게 하락하며 1기가비트(Gb) 제품 기준으로 2달러 선을 위협받고 있다. 2분기 이후 슬글슬금 떨어지던 메모리반도체 가격은 이달 들어 눈에 띄게 낙폭을 확대하고 있다.

시장조사기업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8일 DDR2 1Gb 800㎒ D램 현물 가격은 4월 2.99달러로 정점을 찍은 후 4개월 연속 하락하며 2.06달러 선까지 내려앉았다. 시장 주력 제품인 DDR3 1Gb 1066㎒ D램도 4월 고점 대비 0.6달러 떨어진 2.41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지난해 1월 이후 꾸준히 상승하며 반도체 호황을 이끌었던 가격 흐름이 1년 반 만에 약세로 돌아선 것이다. 가격 하락이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평소 더 높은 가격에 형성되는 현물 거래가격이 지난 6월부터는 고정거래가격보다 0.1~0.3달러가량 낮아지기도 했다.

기업간 도매거래에 해당되는 고정거래가격이 현물가격보다 높은 것은 드문 일이다. 7월 중 D램 고정거래가격은 DDR3가 2.56달러,DDR2가 2.31달러 수준이었다

가격하락의 주요인으로는 남유럽 재정위기로 인한 D램 수요 감소가 꼽힌다. PC업체들은 최근 재고가 늘어나자 D램 주문을 줄여왔다. 계절적 성수기 진입을 앞두고 D램 수요가 늘어나겠지만 한번 내림세를 탄 가격 흐름을 바꾸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유로화 약세의 영향으로 수익성이 악화된 PC 업체들이 가격인하 요구를 늘리고 있는 것도 D램 제조사들에는 부담이다.

◆삼성 공급확대가 하락세 부추기나


지난달부터 삼성이 D램 공급을 늘린 것도 가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요인이다. 삼성전자는 D램 가격이 약세로 돌아섰는데도 당초 계획보다 6개월 정도 앞당긴 지난달부터 30나노대 D램 양산을 시작했다.

새로 도입한 공정은 메모리 생산성을 60%가량 높일 수 있어 웬만큼 낮아진 가격으로 팔아도 수익성을 유지할 수 있는 효과를 낸다. 이른바 '히트&런(치고 빠지기)'전략을 통해 자신의 수익률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경쟁사 제품들의 채산성을 떨어뜨릴 수 있게 된다. 상대방이 기를 쓰고 쫓아와 공정을 업그레이드하면 즉각 다음 공정으로 나아가 격차를 유지하는 방식은 1위 반도체기업인 삼성의 전매특허이기도 했다.

때문에 삼성 내부적으로는 이번 가격 하락이 시장 독주체제를 굳히는 호기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실제 삼성전자 관계자는 "생산량 확대를 통해 현재 34%대인 D램 시장 점유율을 연말께 40%까지 끌어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과정에서 D램 가격이 더 떨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하이닉스반도체가 내년 초부터 30나노대 D램 양산을 시작하면 공급량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다만 엘피다 마이크론테크놀러지 등이 여전히 50나노대 제품을 생산하고 있고 파워칩 난야 등 대만업체들의 경우 최근 추진했던 증자가 무산되면서 추가 투자가 어려워졌다는 점에서 공급량 확대가 제한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치킨 게임을 거치면서 겨우 연명한 후발 주자들과 달리 삼성,하이닉스는 미세공정 연구 · 개발(R&D)을 확대하며 기술 격차를 벌리고 있다"며 "올 하반기는 점유율,수익성 등에서 선 · 후발 업체간 격차가 확대되는 변화의 시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tae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