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나오토 일본 총리가 10일 담화를 발표한 직후 한국 정부는 곧바로 환영의 뜻을 밝혔다. 양국 간 과거사 문제를 매듭짓고 미래지향적인 관계로 나아가려는 '정치적 의지'를 보여줬고 문화재 반환 등의 후속 조치까지 준비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대목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한일병합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고,양국 간의 핵심 이슈인 징용 피해자와 위안부 문제 등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한계로 지적됐다.

◆무라야마 담화보다 진일보

간 총리의 담화는 전체적으로 1995년 '무라야마 담화'보다 진일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선 일본 측이 병합 과정의 강제성을 간접적으로 시인한 대목이다. 담화문은 "3 · 1독립운동 등의 격렬한 저항에서도 나타났듯이 정치 · 군사적 배경하에 당시 한국인들은 그 뜻에 반해 이뤄진 식민지 지배에 의해 국가와 문화를 빼앗기고,민족의 자긍심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고 밝혔다.

각론상으로는 '말'보다는 '행동'으로 사죄의 뜻을 표하려는 태도도 전과 다르다. 담화문에는 △사할린 동포 지원 △징용 피해자 유골 반환 등의 계획이 담겼다. 이 대목은 일본 측이 담화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 준비한 '선물'로 보인다.

아울러 간 총리가 극우세력의 거센 저항과 참의원 선거 패배 이후 불안정한 당내 정치 상황을 무릅쓰고 담화 발표를 강행한 것도 평가할 대목이다. 이번 담화가 무라야마 담화와 마찬가지로 공식적인 각료회의의 의결을 거쳐 정식으로 발표된 점도 성의있는 대목으로 평가받고 있다.

김희정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전의 (담화) 내용이 주로 동북아 국가 전체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한국이라는 나라를 특정해서 사과한 것에 의미를 두고 있다"며 "이전에 반복돼 나왔던 일본의 담화 등보다 진일보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 "병합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문화재 반환 등의 구체적 액션이 나온 것은 좋은 시작"이라고 말했다.


◆민감한 현안 피해 가

일본 정부가 이번 담화에서 병합의 불법성과 무효를 인정하지 않았고 과거사 갈등의 핵심인 징용 피해자와 위안부 문제 등을 외면했다는 점은 한계로 지적됐다.

외교가에서는 강제병합의 불법성을 일본이 쉽게 인정하지 못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고 본다. 우선 일본 내 강경보수파의 반발 때문이다. 또 강제병합의 불법성을 인정하면 곧바로 징용 피해자 등의 개인청구권 문제로 비화될 수 있다.

또 재일교포들의 숙원 사항인 지방참정권 문제도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 일왕 방한과 같은 상징적 조치를 언급하지 않은 점도 아쉬운 대목으로 지적된다.

따라서 이날 담화에도 불구하고 양국 관계가 곧바로 '장밋빛'으로 바뀌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결국 일본이 앞으로 어떻게 후속 조치를 해 나가느냐가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사할린 동포 지원과 문화재 반환 등 후속 이행 과정이 순조롭게 이뤄진다면 강제병합 100년의 의미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천안함사태 이후 양국 간에 안보 공조가 강화되고 있고 오는 11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와 아시아 · 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회의를 앞두고 한반도와 지역 · 글로벌 차원에서 협력해야 할 공동 현안이 증가하는 점도 양국 관계의 견고도를 높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독도문제 등도 복병

그러나 복병은 여전히 남아 있다. 특히 과거사 문제와 동전의 앞뒷면 격인 독도문제가 양국 관계를 다시 긴장으로 몰아갈 개연성이 있다.

당장 일본이 이달 말 이후로 연기한 방위백서 발표는 또 다른 불안 요인이다. 여기에 잘못된 과거를 미화하고 우리의 아픈 상처를 건드리는 일본 일부 정치인들의 망언이 언제 어떻게 불거져 나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렇게 볼 때 이번 담화는 전체적으로 과거사 문제에 대한 전향적인 일본의 정치적 의지를 확인했다는 성과가 있지만 동시에 양국이 어떻게 관계를 잘 만들어나갈 것이냐의 숙제를 안겨주고 있다.

도쿄=차병석 특파원/박수진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