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조선 위해 일생을 바친 일본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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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세 다츠지ㅣ오오이시 스스무 외 지음ㅣ지식여행ㅣ257쪽ㅣ1만5000원
3 · 1운동 직전인 1919년 2월8일,최팔용과 백관수 등 재일 조선인 유학생들이 경찰에 체포됐다. 영어와 한국어,일본어로 독립선언문을 만들어 비밀리에 각국 대사관과 신문사,학자들에게 발송했기 때문이다. 이날 출판법 위반 혐의로 붙잡힌 이들은 이틀 만에 기소돼 15일 1심 판결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채 5개월도 지나지 않은 6월 말에는 상고심까지 모두 끝났다.
《후세 다츠지》는 항소심에서 이들을 변호한 일본인 인권변호사 후세 다츠지(1880~1953년)에 대한 책이다. 그의 외손자 오오이시 스스무와 재일조선인 3명이 연구하고 되살린 후세의 생애와 업적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재판부의 자비를 바라며 선처를 부탁한 1심 변호사들과 달리 후세는 조선 독립의 정당성을 지지했다. 후세는 조선인 유학생들이 1918년 윌슨 미국 대통령이 외친 민족자결,식민지주의 철폐,국제연맹 결성 등 평화원칙에 기반해 정당한 활동을 했다고 옹호했다. 법정에서 그는 일본이 체코슬로바키아의 독립을 위해 시베리아에 출병한 사실을 지적하며 "어째서 조선의 독립운동은 원조하지 않는가"라고 검사에게 질문해 일대 논란을 일으켰다.
가문의 이름을 새겨 넣은 인력거를 탈 만큼 성공한 변호사였던 후세가 인권변호사로 변신한 건 마흔 살 때였다. 개인잡지 '법정에서 사회로'를 창간하며 그는 "주요 활동 장소를 법정에서 사회로 옮기겠다"고 선언,일본 지식인들의 양심을 일깨웠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
《후세 다츠지》는 항소심에서 이들을 변호한 일본인 인권변호사 후세 다츠지(1880~1953년)에 대한 책이다. 그의 외손자 오오이시 스스무와 재일조선인 3명이 연구하고 되살린 후세의 생애와 업적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재판부의 자비를 바라며 선처를 부탁한 1심 변호사들과 달리 후세는 조선 독립의 정당성을 지지했다. 후세는 조선인 유학생들이 1918년 윌슨 미국 대통령이 외친 민족자결,식민지주의 철폐,국제연맹 결성 등 평화원칙에 기반해 정당한 활동을 했다고 옹호했다. 법정에서 그는 일본이 체코슬로바키아의 독립을 위해 시베리아에 출병한 사실을 지적하며 "어째서 조선의 독립운동은 원조하지 않는가"라고 검사에게 질문해 일대 논란을 일으켰다.
가문의 이름을 새겨 넣은 인력거를 탈 만큼 성공한 변호사였던 후세가 인권변호사로 변신한 건 마흔 살 때였다. 개인잡지 '법정에서 사회로'를 창간하며 그는 "주요 활동 장소를 법정에서 사회로 옮기겠다"고 선언,일본 지식인들의 양심을 일깨웠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