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은 단절을 전제로 한다. 감옥은 그래서 두렵고 고통스러운 곳이다. 하지만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쓴 신영복 교수처럼 단절감 속에서도 새로운 생명의 에너지가 분출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감옥에서 신채호는 《조선상고사》를,홍명희는 《임꺽정》을 세상에 내놨다. 김남주는 우유곽에 못과 손톱을 꾹꾹 눌러 《나의 칼 나의 피》라는 시를 썼다. "사형은 영혼의 모독이다"라고 외친 도스토예프스키는 차가운 옴스크 감옥에서 《죽음의 집의 기록》을 남겼다.

이 책 《가시울타리의 증언》의 저자는 30년간 교도관으로 일하면서 지켜본 감옥 사람들의 단절 극복기와 에피소드를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12 · 12 군사반란 사건 관련자들,김지하 · 이부영 · 김근태씨 등 민주화 인사들과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1988년 탈옥한 지강헌 등 교도소를 거쳐간 수많은 사람들을 통해 굴곡진 우리 현대사를 조명한다. 아울러 1987년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의 실상이 알려지는 데에는 한 교도관의 결정적인 제보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23년 만에 처음 공개했다.

이 책에 따르면 '고문기술자' 이근안은 "내가 왜 구속돼 중형을 받아야 하나. 좌익들로부터 나라를 구한 사람이 나인데…"라고 말했다. 고문 피해자였던 김근태 전 의원은 44일간 감방에 머무르며 130여장의 미농지에 글과 그림으로 고문당한 내용을 상세히 기록했다.

"흑산도에서 태어나 스물 넷의 꽃다운 나이에 교도소 망루에 올라간 청년은 어느덧 노인의 형상이 되어 버렸다. 너무 늦게 깨달았지만 등대와 망루는 둘이 아니고 하나였다. "

저자는 자신은 추관(秋官 · 형리)이 아니라 끝끝내 사랑의 등불을 켜들고 희망을 전파한 교도관이었으며,자신이야말로 1평 남짓한 감시대에 갇혀 지낸 진짜 감옥생활자였음을 실토한다. 그 실토 속엔 인간의 죄와 벌,고문과 사형제 등을 화두로 펼친 문학과 철학적 사색이 가득하다. "1970년대부터 21세기에 이르는 어두운 사회사,다시 말해서 가시울타리 속의 엄정한 민중사"라는 이부영의 찬사가 지나치지 않다.

전장석 기자 sak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