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르틴의 파이와 닐스야드의 와플은 드셔보셨나요?”
신동찬씨(27)는 일주일에 나흘 이상 와플, 케이크, 파이 등 달콤한 디저트를 찾아다닌다. 이에 반해 직장인인 신씨가 술을 마시는 날은 일주일 중 단 하루로 이마저도 사내 회식이나 친구들 손에 의해 억지로 나가는 술자리다. 신씨는 “술은 몸을 힘들게 하고 스트레스를 쌓이게 하지만 맛있는 디저트는 피로를 풀고 기분을 좋게 한다”며 ‘술보다 디저트’가 좋은 이유를 설명했다.

신씨와 같이 ‘술보다 디저트’를 택하는 일명 ‘달콤남’이 늘고 있다. 던킨도너츠가 해피포인트(구매 적립 포인트)를 통해 조사한 결과, 올 1월에서 7월까지 디저트를 구매한 남성고객은 작년 동기(전체 200만 명) 대비 14만 명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전성민 던킨사업부 마케팅팀 대리는 “지금까지 주고객인 20대 여성층을 겨냥해 젊은 남성배우를 광고모델로 발탁했다”며 “늘어나는 남성고객들을 감안해 여성모델도 기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달콤남’들은 케이크, 와플, 도너츠를 밥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거나 발품을 팔아 맛있는 디저트 전문점을 찾아다니는 등 여성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디저트를 적극적으로 즐긴다. 이들이 남성 불모지였던 디저트산업에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최근 다양한 디저트를 출시한 파리바게트 카페 삼성점의 경우, 남성고객이 지난 해에 비해 150%까지 증가했다. 주로 점심, 저녁, 출퇴근 시간대에 남성고객들이 모여 치즈케이크, 푸딩, 붓세 등의 디저트 제품을 구매한다고 한다.

김기태 파리바게트 SPM영업팀 주임은 “이전 남성고객들은 바게트, 소시지빵 등 심심한 맛의 빵을 주로 찾았지만 요즘은 달콤한 디저트를 선호한다”며 “크림이 샌드된 프랑스식 케이크 붓세의 경우, 최근 여성고객들을 타깃으로 출시됐지만 남성들에게 더 인기”라고 덧붙였다.

◆ 남성, ‘디저트 붐’에 빠지다
이 같이 ‘달콤남’이 증가하는 이유로 우선 디저트 문화의 붐을 들 수 있다. 초콜릿 숍, 와플 카페, 도너츠 전문점 등이 번화가를 중심으로 퍼지면서 남성들도 디저트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달콤남’ 신동찬씨는 “거리에 카페들이 수도 없이 생기고 미디어에서는 카페를 찾는 장면이 자주 묘사돼 남성들도 디저트를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게 됐다”고 주장했다.

디저트 수요층인 20, 30대들의 해외 경험이 빈번해진 것도 ‘달콤남’의 증대를 부추기고 있다. 장아름 파리바게트 프로모션 주임은 “젊은층의 어학연수와 해외여행 경험이 늘면서 남성들의 입맛이 서구화됐다”며 “남성들도 이젠 베이커리가 아닌 디저트를 즐길 수 있는 카페 형식을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전반적으로 늘어난 경제적 여유계층이 선진국형 기호식품인 코코아와 커피 소비를 이끈 것도 한 이유다. 영국의 시장조사업체 LMC에 따르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만 달러 오르면 코코아 소비는 매년 0.8kg 증가한다. 또한 국제커피기구(ICO)는 세계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매년 커피 수요가 1.3%씩 늘고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국내 GDP(올해 하반기 3.2% 성장 전망, 한국경제연구원)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고 7일 세계은행이 낸 ‘세계 경제규모 및 국민소득 순위’에서 한국은 15위를 차지했다. 국내 경제가 성장하며 전체적인 디저트 소비와 함께 ‘달콤남’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 “디저트, 동성친구와는 못 먹어”
달콤한 디저트를 즐긴다는 점은 같지만 ‘달콤남’은 일반 ‘여성 디저트족’과 다른 소비 패턴을 가지고 있다.

먼저 여성들의 경우, 동성 친구들과 디저트를 소비하는 경향이 크다. 이 때문에 여성들에게는 디저트를 사이에 놓고 카페에서 이야기를 즐기는 ‘대화 문화’가 발달돼 있다. 하지만 남성들은 동성친구들과 디저트를 즐기기가 쉽지 않다. 아직 오래 앉아 대화를 즐기는 문화에 익숙치 않기 때문이다. 던킨도너츠 측에 따르면, 여성고객이 카페에 머무르는 시간은 보통 2, 3시간 정도지만 남성고객은 길어야 30분 밖에 되지 않는다.

‘달콤남’을 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은 것도 이들을 빨리 일어서게 하는 요인이다. 디저트 카페를 주로 찾는 박세진씨(20)와 이창진씨(33)는 각각 “디저트 먹는 남성들을 ‘게이’로 보는 시선이 있다”, “단 것을 즐기는 것은 죄가 아닌데 그런 분위기가 있다”고 밝혔다. '단 것을 즐기는 것은 남자답지 못하다'는 사회적 편견이 아직 남아있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여성 디저트족은 디저트 가게를 선택할 때 ‘오래 앉아있을 수 있는 분위기’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달콤남은 ‘양’과 ‘가격’을 우선 고려한다. 케이크 뷔페를 운영하는 남승민 신명제과 대표는 “여성들은 카페에 앉아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피스 케이크’를 선호하지만 남성들은 양과 가격을 중요시해 ‘홀 케이크’ 주로 소비한다”고 전했다. 이어 “남성 고객이 디저트 뷔페에서 먹는 것에만 열중하다 급체, 응급실에 실려간 적이 있다”고 해프닝도 소개했다.

또한 ‘달콤남’은 여성들과 달리 디저트의 높은 칼로리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이에 대해 송미정 던킨도너츠 강남대로점 부점장은 “여성고객들은 베이글, 글레이즈드 등 비교적 칼로리가 적은 제품을 선호하고 남성들은 잼이 든 필드류, 초코 도너츠 등 높은 열량의 도너츠을 주로 찾는다”고 설명했다. 인터뷰 중 만난 여덟 명의 ‘달콤남’들 역시 디저트를 고를 때 칼로리를 고려한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다이어트와 칼로리를 생각해 디저트로 끼니를 대신하기도 하는 ‘여성 디저트족’과는 다른 모양새다.

◆ 달콤남들 ‘술보다 디저트가 좋은 이유’를 밝히다
그렇다면 달콤남들이 술 대신 디저트를 택하는 이유는 뭘까. 지난 달 26일 오전 11시 여의도 63빌딩 내에 위치한 63시티 파빌리온 디저트뷔페에서 달콤남 세 명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이날 모인 패널은 문구백씨 (24) 손성진씨(26) 최동일씨(30대 후반)로 모두 스스로를 ‘디저트 마니아’라고 평했다.

과일, 케이크, 수제 초콜릿, 슈크림, 쿠키, 셔벗 등이 담긴 접시를 앞에 둔 세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밝힌 ‘술보다 디저트가 좋은 이유’는 ‘건강’과 ‘자유’였다.

최동일 씨는 “술자리에 있으면 항상 몸이 축나지만 디저트는 몸을 기분 좋게 한다”고 주장했다. 술 자체도 몸에 안 좋지만 술자리가 주로 저녁에 있어 피곤이 쌓인다는 것이다. 패널들은 모두 술자리가 대부분 밤 늦게까지 이어진다는 것에 부담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반면 시간 제약이 없는 디저트 타임은 이들이 술보다 디저트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남자는 술을 마셔야 한다’는 강압적인 분위기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체대생인 손성진 씨는 “운동선수들은 술을 많이 마시는 분위기가 있어 힘들다. 이런 억지 문화 없이 자기 마음대로 즐길 수 있는 디저트가 훨씬 좋다”고 말했다. 또한 “술은 여러 명이서 다 같이 마셔야 하지만 디저트는 한, 둘이 먹어도 어색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어 여러 종류의 수제초콜릿을 가지고 자리로 돌아온 문구백 씨는 “이처럼 디저트는 종류가 다양하다. 술은 메뉴에 한계가 있지만 디저트는 선택의 즐거움도 따른다”고 설명했다.

‘디저트를 고려해 식사 메뉴를 선택한다’는 문씨와 ‘블로그에서 행선지 주변 디저트 맛집을 검색해 본 후 집을 나선다’는 손씨, ‘10년 이상 디저트를 즐겨 이젠 손수 만들기도 한다’는 최씨. 금요일 정오, 그들 사이에 술은 없었지만 디저트를 앞에 둔 세 남자는 ‘직장’, ‘연애’에 대한 즐거운 대화를 이어갔다.

한경닷컴 강지연 인턴기자 ji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