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년엔 총독부가 희귀 도서 상당수를 일본 궁내청에 기증 형식으로 넘겨버렸다. 버젓이 '조선총독부 기증'이란 도장까지 찍었다. 기증의 주체가 총독부였으니 사실상의 약탈이다. 그 가운데 '조선왕실의궤'도 포함돼 있었다. 대한제국의 '제실도서지장(帝室圖書之章)'이 찍힌 제실도서,임금을 위한 교양강좌용 서적인 '경연(經筵)' 등도 일부 넘어갔다. 개인들이 매매 도굴 등의 방법으로 가져간 문화재는 훨씬 많다. 개인 소장품은 예술적 가치가 높은 서화 도자기가 주류를 이룬다.
문제는 일본으로 반출된 우리 문화재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하게 모른다는 것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일본의 250여개 기관 및 개인이 6만1409점을 소장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궁내청 서능부만 해도 636종 4678책을 보관중이라지만 미확인 자료가 더 있을 것이란 주장이 끊이질 않는다.
이 가운데 정식으로 돌려받은 것은 달랑 1432점이다. 1965년 체결된 한 · 일 협정에 따라 도자기 434점,전적 852권 등이 반환됐다. 그나마 제목이 같은 책을 낱권으로 계산한데다 일제시대 집배원 모자 · 집신 등 체신자료 수십점을 넣어 숫자를 부풀렸다. 당시 반환된 자료는 국 · 공립기관 보관품에 한정됐고 개인 소장품은 제외됐다. 협정문 말미에 '민간 소유물도 반환을 권장하겠다'는 단서만 달았을 뿐이다. 이번에 간 나오토 일본 총리가 인도하기로 한 문화재도 국 · 공립기관 소장품으로 제한됐다. 궁내청 자료 중 불법반출의 근거가 명확한 조선왕실의궤,제실도서,경연 등 120종 661책이 협상대상이 될 것 같다.
문화재 되찾기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우선 전문 조사단을 구성해서 궁내청 소장 한국 전적을 빠짐없이 확인한 후 협상에 들어가는 게 순서다. 이후 다른 국 · 공립 기관이나 개인 소장 문화재까지 불법반출 여부를 파악해 국제관례에 맞춰 반환의 명분과 논리를 쌓아가야 한다. 아무리 오래 걸리더라도 포기해서는 안된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