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들의 작업실은 창작의 산실인 동시에 그림을 구성하는 미장센의 무대이기도 하다. 낡고 오래된 철제 침대,해진 소파,높은 의자 위에 놓인 팔레트,캔버스에 추상화를 그린 것처럼 벽과 나무 바닥에 마구 흩뿌려 놓은 물감 자국,구겨진 침대 시트,이젤 등 아틀리에에 있는 모든 것들이 그림 속의 모델과 함께 등장한다. 이렇게 화가의 아틀리에는 그림이 되고,그림은 아틀리에가 되기도 한다.

서울 인사동 토포하우스(대표 오현금)에서 오는 24일까지 계속되는 '드로잉,작가들의 방'전은 작가들의 내면에 숨겨진 진솔한 이야기가 아틀리에를 통해 어떻게 세상 밖으로 나오는지를 보여준다.

프랑스 인기 작가 나탈리 타초를 비롯해 미국의 리처드 홀글런드,한국 작가 김영미 변웅필 박재용씨 등 6명이 참여하는 이 전시회는 각기 다른 문화 · 사회 · 예술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작업실에 숨겨진 의도를 관객들과 공유하겠다는 취지로 마련됐다.

작가들은 작업실에서 영감,호기심 등 창작의 근원들을 끄집어내듯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포착하며 더불어 사는 우리의 인생사를 드로잉으로 보여준다.

중국 페이즈화랑 전속 작가 김영미씨는 책읽는 황소와 당나귀,올빼미,새 등 토속적인 동물 캐릭터를 의인화한 드로잉 20여점을 소개한다. 사람과 동물이라는 이분법적 구조 아래 인간이 여타 생명체보다 우수하다는 통념을 배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작가는 "2007년부터 서울 성산동 작업실에서 문득 인간 중심의 극단적 시각보다는 다른 생명체에 대한 존재감에 무게를 두고 싶다는 생각이 떠올라 시작한 작품들"이라고 설명했다.

'자화상의 화가' 변웅필씨는 희망과 절망의 경계를 넘나드는 현대인의 초상을 드로잉 10여점으로 형상화했다. 작업실에서 하루 내내 부대끼며 살아가는 화가들처럼 현대인들의 얼굴에 인간의 근원적인 호기심을 담아냈다고 그는 말했다. 박재용씨는 소박한 우리네 이야기를 순진한 나무처럼 그렸다.

프랑스 여성 작가 나탈리 타초는 작업실에서 떠올린 자신의 모습과 가족,이웃들의 이미지를 중첩시킨 드로잉 작품을 내놓았다. 미국 작가 리처드 홀글런드는 작업장의 추상적인 이미지나 문자를 작품으로 승화시켜 관람객 스스로 작품의 스토리를 만들 수 있도록 유도한다. (02)734-7555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