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한일 강제병합 100년이 되는 해이다. 식민지 지배에 대해 일본 정부가 표명한 사과의 형식과 내용의 정당성에 관한 논의와는 별도로,우리 민족이 100년 전 국제사회에서 생존하고 존재하는 양식에 어떤 문제가 있었기에 일본의 식민지가 돼 민족 자존심에 씻기 어려운 상처를 입게 됐는가를 새삼 반성해야 할 때다.

100년 전 한반도 상에 존재했던 국가와 지금의 한국을 비교하면 가장 큰 차이가 국제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이다. 당시 한반도의 주변국과 동아시아 국제정치에 참여했던 서양 제국에 조선은 경제적 · 국제정치적 · 군사적으로 존재하지 않아도 전혀 문제가 없을 정도의 미미한 국가였다. 일본이 제국주의를 국가전략으로 세우고 핵심적으로 추진했던 조선의 식민지화 정책에 대해 서양 제국은 찬성하거나 암묵적으로 승인했다. 당시 국제사회의 질서에서 약소국 조선의 운명은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100년 전 엄중했던 국제환경 속에서 개별적인 저항운동은 있었어도 폭풍 속의 촛불 같던 국가운명을 바꾸려던 국가 정책결정자들의 실효성 있고 통합적인 국가행위가 없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 앞에서 친일과 반일의 논의를 넘어서는 책임 규명이 필요할 것이다.

지금의 한국을 모르는 세계인은 거의 없으며,한국을 모르더라도 한국 기업의 상품을 일생 동안 한번도 사용하지 않고 죽는 세계인은 매우 드물 것이다. 한국은 경제적으로 세계 10위권의 규모를 갖고 있으며,국력도 대체로 10위권의 위상을 갖고 있다.

한국이 발전하는 동안 일본의 역할에 대한 평가는 긍정과 부정이 나눠진다. 그러나 일본이 의도적으로 수행했던 역할은 아니었어도 따라잡아야 할 대상으로 언제나 이웃에서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에게는 큰 자극이 되었다. 더욱이 우리가 항상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또다시 어려움을 당할 수 있다는 정신적 긴장감의 기초를 제공하는 국가였다.

1945년 이래 과거 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감정적으로 앙금이 남았으나,우리에겐 선진국인 일본처럼 되는 것이 목표였던 산업화 시기가 있었다. 일본이 성취한 경제대국의 위상은 부러움의 대상이었으며 학습의 대상이기도 했다. 일본의 선진적인 여러 측면을 배워야만 한국도 선진국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일본이 성취했다면 한국도 비슷하게나마 이룰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을 제공했다.

일본이 앞서 산업화에 성공하기까지 국내외에서 겪었던 많은 어려운 문제를 극복한 경험이 후발 산업국인 한국에는 비슷한 어려움을 이겨내는 데 귀중한 교훈이 되었다. 또한 문화적 · 언어적 · 환경적 · 인종적으로 비슷한 일본이 할 수 있는 것이라면 한국이라고 못할 것 없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자극을 제공했던 이웃이었다.

지난 100년간 비대칭적인 국력으로 인해 어려웠던 한 · 일 관계가 상대적 국력의 변화에 의해 진정한 의미의 상호의존 관계로 변화됐다. 앞으로 한 · 일간 협력과제는 숱하게 많다. 북한체제에 대한 대응,평화적 통일과정에 있어서의 협력,부상하는 중국 국력에 대한 협조적 대응,세계화가 한층 진전된 국제사회 속의 기여 측면 등에서 한 · 일 간 협력은 대폭 확대될 것이다. 과거 역사에 관한 인식문제는 여전히 한 · 일 간 극복해야 할 과제가 될 것이지만 그 중요성은 매우 낮아질 것이다.

한국의 국가발전 전략 형성에서 일본을 의식하거나 목표로 삼지 않아도 되는 진정한 의미의 극일(克日)이 시작됐다. 우리가 일본을 완전히 따라잡아 일본을 극복했다는 뜻이 아니다. 목표로서의 일본은 우리에게 더 이상 큰 자극을 주지 않는다. 세계 최고수준을 달성하는 것이 우리에게 자연스러운 목표가 된 단계로 한국이 진입했다는 것이다.

김호섭 < 중앙대 정치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