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공시족(公試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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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 풍악을 내려주시고 부수찬을 제수하니 머리에 어사화,몸에는 앵삼이라.비단옷 입은 화동이 앞을 서 옥피리 소리,여민락에 갖은 풍악,어깨춤이 절로 난다….' 판소리 춘향가 중 이몽룡이 장원급제한 뒤 축하받는 모습을 그린 대목이다. 지방 관리의 평범한 자제가 단숨에 중앙 무대 스타로 떠올랐으니 감격이 얼마나 컸을까. 이런 드라마를 가능케 한 것이 바로 과거제도였다.
고려 광종 때 도입된 과거제도는 조선말까지 1000년 가까이 존속했다. 응시자격에 제한을 두긴 했으나 '하면 된다'는 희망을 심어줬고 비교적 공평하게 인재를 발굴하는 수단으로 순기능을 했다는 평가가 많다. 과거가 있는 해에는 전국 유생들이 시험장으로 몰려들었다. 요즘 말로 하면 공시족(公試族)이다. 조선 정조 24년 치러진 과거 1차시험 격인 초시 응시자는 무려 11만여명에 달했다고 한다. 좋은 자리를 잡으려고 싸우다가 다치는 사람이 생겼다는 기록도 있다. 조선 후기 실학자 박제가는 '예전의 백 배가 넘는 유생에 힘센 무인,술 파는 장사치까지 들어오니 과거 보는 뜰이 뒤죽박죽되지 않을 리 있겠는가. 심지어 남을 살상하거나 압사하는 일까지 발생한다'고 했다.
과거시험 열기는 현대의 공무원채용시험으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특히 5급 공채는 '고시'라는 이름 아래 인재들을 대거 시험장으로 끌어들였다. 7,9급도 학력이나 자격증 없이 도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기가 높다. 올해만 해도 행정직 응시생이 5급 1만3069명,7급 5만1452명,9급 10만5911명으로 총 17만명이 넘었을 만큼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공무원 채용방식이 61년 만에 확 바뀐다는 소식이다. 5,7급 공채 인원을 단계적으로 줄이는 대신 민간전문가 특별채용을 늘리고,'행정고시'라는 명칭도 없애겠다는 것이다. 2015년께는 5급 특채 비율을 50% 수준으로 확대하겠다니 적잖은 변화다.
일단 합격하면 연공서열로 승진하는 관행이 공직 경쟁력 약화의 원인이란 판단에서 나온 정책이다. 세상은 아찔한 속도로 변하면서 끊임없이 혁신을 요구하는 마당에 경쟁보다는 보신에 힘쓰는 폐해를 줄이겠다는 얘기다. 취지는 좋지만 여론수렴과 유예기간 없이 시행되는 탓에 공직사회가 술렁이고,창졸간에 합격 기회가 줄어든 수십만 공시족의 불만도 대단하다고 한다. 부작용을 줄이는 대책을 내놔야 할 것 같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고려 광종 때 도입된 과거제도는 조선말까지 1000년 가까이 존속했다. 응시자격에 제한을 두긴 했으나 '하면 된다'는 희망을 심어줬고 비교적 공평하게 인재를 발굴하는 수단으로 순기능을 했다는 평가가 많다. 과거가 있는 해에는 전국 유생들이 시험장으로 몰려들었다. 요즘 말로 하면 공시족(公試族)이다. 조선 정조 24년 치러진 과거 1차시험 격인 초시 응시자는 무려 11만여명에 달했다고 한다. 좋은 자리를 잡으려고 싸우다가 다치는 사람이 생겼다는 기록도 있다. 조선 후기 실학자 박제가는 '예전의 백 배가 넘는 유생에 힘센 무인,술 파는 장사치까지 들어오니 과거 보는 뜰이 뒤죽박죽되지 않을 리 있겠는가. 심지어 남을 살상하거나 압사하는 일까지 발생한다'고 했다.
과거시험 열기는 현대의 공무원채용시험으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특히 5급 공채는 '고시'라는 이름 아래 인재들을 대거 시험장으로 끌어들였다. 7,9급도 학력이나 자격증 없이 도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기가 높다. 올해만 해도 행정직 응시생이 5급 1만3069명,7급 5만1452명,9급 10만5911명으로 총 17만명이 넘었을 만큼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공무원 채용방식이 61년 만에 확 바뀐다는 소식이다. 5,7급 공채 인원을 단계적으로 줄이는 대신 민간전문가 특별채용을 늘리고,'행정고시'라는 명칭도 없애겠다는 것이다. 2015년께는 5급 특채 비율을 50% 수준으로 확대하겠다니 적잖은 변화다.
일단 합격하면 연공서열로 승진하는 관행이 공직 경쟁력 약화의 원인이란 판단에서 나온 정책이다. 세상은 아찔한 속도로 변하면서 끊임없이 혁신을 요구하는 마당에 경쟁보다는 보신에 힘쓰는 폐해를 줄이겠다는 얘기다. 취지는 좋지만 여론수렴과 유예기간 없이 시행되는 탓에 공직사회가 술렁이고,창졸간에 합격 기회가 줄어든 수십만 공시족의 불만도 대단하다고 한다. 부작용을 줄이는 대책을 내놔야 할 것 같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