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력 산업은 도전정신을 먹고 산다. 창조란 항상 최초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흔해 빠진 레이저 영상쇼를 이 땅에 최초로 도입한 회사가 시공테크다. 늘 그렇듯 최초의 이면에는 희생,위험,인내,환희 등이 있게 마련이다.

아이디어와 창의력 사업을 하겠다며 1988년 3월 출범한 시공테크는 단군 이래 최대의 경사인 서울올림픽을 지나칠 수 없었다. 한국의 최첨단 이미지를 보여줄 만한 아이디어를 찾아 고민하다 63빌딩을 스크린으로 삼는 대형 레이저 영상쇼를 열자고 서울시올림픽기획단에 제안했다. 밤하늘 한강변에서 세계 최대의 스크린에 멋진 레이저 영상을 쏘아보자.비발디의 '사계'에 내가 좋아하는 장대비까지 연출하면 금상첨화 아닐까? 이 벅찬 꿈은 현실로 이뤄졌지만 이 과정에서 내 수명은 최소 10년 단축된 것 같다.

전야제 행사로 승인받아 준비에 들어갔다. 한강변에 무대를 만들고 레이저 시스템 12대를 설치했다. 63빌딩의 53개층을 스크린으로 쓰기 위해 특수 종이를 붙였고 시범아파트 옥상에 페니 프로젝터라고 하는 영상투사기를 갖다 놓았다.

올림픽 개막 전날인 9월16일 밤 TV 생방송으로 중계하는 만큼 한 치의 오차도 용납되지 않았다. 시간과의 치열한 싸움이 시작됐다.

첫 번째 직면한 문제는 미국에서 도입한 레이저 시스템의 특수한 전원공급 방식이었다. 경험도 없이 적은 인원으로 밥 먹듯 밤새워 일하다 미처 챙기지 못한 점들이 나타난 것.전원만 연결하면 작동할 줄 알았는데 미제는 우리나라 3상 4선식과는 다른 전기공급 방식을 사용해야 했다. D데이를 1주일 앞두고 한전에 요청해 긴급 변전소를 한강변에 만들기 시작했다. D데이 하루 전에 간신히 변전소 공사를 마쳤다. 공사 기간 내내 마음을 졸여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두 번째 난관은 냉각 방법이었다. 레이저가 5와트 이상이면 공기가 아닌 물로 식혀줘야 한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코앞에 한강이 있어 아무런 걱정도 안하고 있었는데 행사 이틀 전에 온 미국 엔지니어들이 한강물은 안 된다고 통고했다. 불순물이 들어가면 작동을 안하는 만큼 적어도 수돗물 정도의 수질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정말 난감했다. 갑자기 그렇게 깨끗한 물을 어떻게 대량으로 구할 것인가? 그러나 급하면 통한다고 했다. 궁리 끝에 영등포 소방서를 찾아가 부탁했다. 국가적 과제를 맡은 내가 불쌍했는지 수돗물을 실은 10대의 소방차를 동원해줬다.

내 수명을 줄인 클라이맥스는 행사 당일 그것도 생방송 시작 15분 전쯤 일어났다. 레이저 빔 발사 장면을 담기 위해 아우성치던 카메라 기자 중 한 명이 레이저에 연결된 물 공급 호스를 부러뜨려 물이 갑자기 무대로 쏟아지기 시작한 것.황인용 아나운서와 여성 사회자 옆에 서 있던 내게 직원 한 명이 다가와 이 사실을 알려 주었다. 사색이 된 내게 바닥에 흐르는 물의 의미를 모르는 두 사회자는 너무 긴장할 필요없다며 내 어깨를 다독거렸다. 그때 나는 전광석화처럼 움직이는 미국 기술자들과 우리 엔지니어들의 모습을 보았다. 그들은 호스 커넥터를 바꿔 끼우는 작업에 들어갔다.

드디어 생방송이 시작됐다. 가슴이 얼어붙은 내게 사회자가 마이크를 갖다댔다. "자 이제 2~3분 후면 레이저가 발사되는데,이 레이저 영상을 연출한 시공테크 박기석 사장에게 설명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 나는 더듬거리며 설명을 시작했다. 황인용씨가 정해진 시간을 계산하며 말했다. "이제 1분 남았습니다. " "30초 남았습니다. " "드디어 발사됩니다. "

아? 그때 레이저 광선이 나오지 않았다면? 그러나 신은 우리 편에 있었다. 바로 1분 전에 기계가 수리되어 1초도 안 틀리고 정확하게 새파란 레이저 빔이 밤하늘을 힘차게 가르고 63빌딩에 꽂혔다.

한국 최초의 레이저쇼 생중계는 대성공으로 끝났다. 우리 직원들과 미국 엔지니어는 물론 신에게도 감사했다. 그 이튿날 다시 조용해진 한강변을 걸으며 나는 생각했다. 시공테크는 절대 실패할 운명이 아니구나.

이 사건들을 겪으며 절실하게 느낀 것은 '미리 생각하기'였다. 엔지니어들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대기시키지 않았다면 레이저쇼는 실패로 끝났을 것이다. 무엇이든 사전에 대비하면 위험을 줄이면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음을 체험했다. 그 후 '미리 생각하기'는 시공테크가 국내 최대 전시문화 기업으로 발전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고 회사 내 문화로 자리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