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가 '더블 딥'(경기 일시 회복 후 재하강)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데도 투자자들이 투자등급 이하인 정크본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미국의 저금리 정책으로 시중 실세 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뭉칫돈이 고수익을 좇아 움직이는 데 따른 현상이다. 미국의 저금리는 홍콩 주택 가격을 끌어올리는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하지만 막상 미국 소비자들은 저금리 혜택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실업자가 증가하면서 개인 신용이 떨어진 데다 대출 규제가 강화됐기 때문이다.

◆정크본드 사상 최대 발행

14일 월스트리트저널은 딜로직 통계를 인용해 지난주(9~13일)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들이 발행한 정크본드가 154억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이달 들어 13일까지 정크본드 발행 규모도 211억달러로,지난 10년간 월간 평균인 65억달러보다 훨씬 많다.

정크본드 시장이 급팽창하는 이유는 미 국채와 모기지 증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높은 정크본드를 구입하려는 투자자들이 증가했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투자자들은 경기 전망이 밝진 않지만 저금리로 기업들의 부도 가능성이 낮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결과적으로 통화당국의 저금리 정책 덕분에 기업 신용 시장은 정상을 찾아가는 셈이다. 고수익 연구회사인 가먼리서치의 크리스토퍼 가먼 사장은 "투자자들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상당 기간 제로 수준의 저금리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하면서 고수익 채권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은 유리한 조건으로 자금을 조달해 높은 금리의 빚을 갚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홍콩 부동산 시장 급등 요인

미국의 저금리는 홍콩 부동산 시장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홍콩달러화가 미 달러와 페그제(고정환율제)로 연동되면서 미국과 마찬가지로 저금리 정책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낮은 금리가 홍콩의 자산 가치를 밀어올리는 것이다.

홍콩의 주택 가격은 지난해 30% 급등한 데 이어 올 들어서도 13% 추가로 올랐다. 중국의 경제성장으로 홍콩 경제가 호조를 보인 데다 저금리의 부작용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홍콩 정부는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는 부동산 시장을 통제하기 위해 일정 규모 이상의 거래에 대해 거래세를 도입하고 모기지 비율을 제한하는 등의 조치를 마련했다.

이 밖에 미국의 저금리 현상은 일본 금리와의 차이를 줄이면서 엔화 가치를 끌어올리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일반 소비자에겐 그림의 떡

미국의 저금리는 신용등급이 높은 계층에게는 낮은 금리로 주택을 사거나 리파이낸싱을 통해 채무를 재조정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강화된 대출 조건을 충족시키기 어려워 저금리 정책 혜택은 제한적이라는 지적이다. 위스콘신주 버틀러의 모기지은행에 근무하는 브라이언 위커트는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사람에게는 은행 돈을 쓰기에 가장 좋은 시기지만 소득이 적은 서민들에게는 은행 문턱이 더 높아졌다"고 말했다. 최근 두 달 새 주택 구입자가 감소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편 토머스 호니그 캔자스시티 연방은행 총재는 13일 네브래스카 링컨시 상공회의소에서 저금리 정책의 후유증을 지적하며 "FRB가 연방기금 금리를 단계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