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고향' 있습니까?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필자가 성장기를 보낸 곳은 서울 여의도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 대학 3학년까지 그곳에서 살았고,공교롭게도 처음과 두 번째 직장도 그 섬에 있었다.
여의도를 떠난 후에도 한동안 멀리서 63빌딩이나 국회 의사당이 보이면 왠지 편안한 맘이 들거나,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오르며 애틋한 회상에 잠기기도 했다. 그간 많이 변해 필자가 동네 친구들과 야구를 즐기던 공터,부모님께 감추려고 성적표를 묻어둔 자리에는 증권타운과 상가 건물이 빽빽이 들어섰다. 어린 시절 가족끼리 즐겨 찾던 식당도 모두 사라졌지만,그래도 살았던 아파트와 다니던 학교 근처를 지날 때면 항상 타임머신을 탄 듯한 묘한 기분이 들곤 했다. 업무를 위해 여의도에 있는 고객의 사무실을 방문하게 되면 일이 잘 될 것 같은 느낌이 들기까지 했으니,아마도 단단히 그 섬의 기가 필자의 몸에 배었던 듯하다.
하지만 여의도에 대한 이런 정서적 유대는 필자가 살던 아파트가 재건축으로 자취를 감춘 후 많이 약해졌다. 서울 어디에나 있는 흔한 아파트지만 마치 고향과 같은 존재로 필자의 무의식 속에 자리했기에 더욱 그런 것 같다. 필자의 부모님 세대만 해도 '고향'하면 나고 자란 집과 여전히 그 집을 지키시는 부모님이 있는 곳이었다. 타지에 살다가도 명절이나 휴가철에 찾을 수 있어 잠시나마 성장기의 추억을 되새기게 해주었을 것이다.
필자 세대의 많은 이들에게 고향은 도시의 아파트 단지인 경우가 많을 듯싶다. 하지만 그 아파트 단지라는 고향에는 더 이상 어릴 적 같이 뛰놀던 친구도 부모님도 살지 않아 일부러 다시 찾아갈 일도 없다. 따라서 부모님 세대의 고향이 주던 혜택을 받기도,그 역할을 접하기도 쉽지 않다. 더구나 재건축과 재개발이 활발해지면서 우연히 어린 시절 자란 동네 아파트 단지 옆을 스치면서 가졌던 짧은 순간의 유년 시절에 대한 추억과 단상의 기회마저도 사라지는 듯해 씁쓸하다.
사람은 시각의 동물이라 그런지 보이지 않으니 느끼기도 어려운 것 같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이제는 자녀들에게 부모의 성장 스토리를 들려주기도 쉽지 않다. '여기가 아빠가 친구들과 뛰놀던 곳이고,저기가 날마다 하굣길에 아이스크림을 사먹던 가게이고,저기는 한 번 갔다가 할머니에게 들켜서 혼이 난 전자오락실이란다'라고 생생하게 보여 주며 들려주고 싶지만,변치 않고 남아 있는 것이 흔치 않은 세상에서 어려운 일이 되어 버린 듯하다.
저명한 문화인류학자인 클로테르 라파이유에 의하면 야구는 축구와 달리 남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 아니라 홈에서 출발해 다시 홈으로 들어오는 경기이기에 귀향(歸鄕)본능이 강한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한다. 혹 지난 수년간 국내 야구팬의 폭발적 증가가 돌아갈 고향이 없거나 사라지고 있는 아쉬움을 달래기 위한 사람들이 늘어서는 아닐까.
박형철 머서코리아 대표 Andy.park@mercer.com
여의도를 떠난 후에도 한동안 멀리서 63빌딩이나 국회 의사당이 보이면 왠지 편안한 맘이 들거나,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오르며 애틋한 회상에 잠기기도 했다. 그간 많이 변해 필자가 동네 친구들과 야구를 즐기던 공터,부모님께 감추려고 성적표를 묻어둔 자리에는 증권타운과 상가 건물이 빽빽이 들어섰다. 어린 시절 가족끼리 즐겨 찾던 식당도 모두 사라졌지만,그래도 살았던 아파트와 다니던 학교 근처를 지날 때면 항상 타임머신을 탄 듯한 묘한 기분이 들곤 했다. 업무를 위해 여의도에 있는 고객의 사무실을 방문하게 되면 일이 잘 될 것 같은 느낌이 들기까지 했으니,아마도 단단히 그 섬의 기가 필자의 몸에 배었던 듯하다.
하지만 여의도에 대한 이런 정서적 유대는 필자가 살던 아파트가 재건축으로 자취를 감춘 후 많이 약해졌다. 서울 어디에나 있는 흔한 아파트지만 마치 고향과 같은 존재로 필자의 무의식 속에 자리했기에 더욱 그런 것 같다. 필자의 부모님 세대만 해도 '고향'하면 나고 자란 집과 여전히 그 집을 지키시는 부모님이 있는 곳이었다. 타지에 살다가도 명절이나 휴가철에 찾을 수 있어 잠시나마 성장기의 추억을 되새기게 해주었을 것이다.
필자 세대의 많은 이들에게 고향은 도시의 아파트 단지인 경우가 많을 듯싶다. 하지만 그 아파트 단지라는 고향에는 더 이상 어릴 적 같이 뛰놀던 친구도 부모님도 살지 않아 일부러 다시 찾아갈 일도 없다. 따라서 부모님 세대의 고향이 주던 혜택을 받기도,그 역할을 접하기도 쉽지 않다. 더구나 재건축과 재개발이 활발해지면서 우연히 어린 시절 자란 동네 아파트 단지 옆을 스치면서 가졌던 짧은 순간의 유년 시절에 대한 추억과 단상의 기회마저도 사라지는 듯해 씁쓸하다.
사람은 시각의 동물이라 그런지 보이지 않으니 느끼기도 어려운 것 같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이제는 자녀들에게 부모의 성장 스토리를 들려주기도 쉽지 않다. '여기가 아빠가 친구들과 뛰놀던 곳이고,저기가 날마다 하굣길에 아이스크림을 사먹던 가게이고,저기는 한 번 갔다가 할머니에게 들켜서 혼이 난 전자오락실이란다'라고 생생하게 보여 주며 들려주고 싶지만,변치 않고 남아 있는 것이 흔치 않은 세상에서 어려운 일이 되어 버린 듯하다.
저명한 문화인류학자인 클로테르 라파이유에 의하면 야구는 축구와 달리 남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 아니라 홈에서 출발해 다시 홈으로 들어오는 경기이기에 귀향(歸鄕)본능이 강한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한다. 혹 지난 수년간 국내 야구팬의 폭발적 증가가 돌아갈 고향이 없거나 사라지고 있는 아쉬움을 달래기 위한 사람들이 늘어서는 아닐까.
박형철 머서코리아 대표 Andy.park@merc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