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의 한 유럽 법인장은 올초 현지 한국 대사를 만난 자리에서 신형 에쿠스를 타줄 것을 요청했다. 대사가 벤츠 대신 에쿠스를 타면 현지 지도층 사이에서 홍보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하지만 "생각해 보겠다"는 답변을 들은 후 연락이 없었다.

현대 · 기아차 GM대우 르노삼성 쌍용차 등은 작년 국내에서 351만3000여대를 생산했다. 중국과 일본 미국 독일에 이어 세계 5위 규모다.

하지만 한국 대사들은 여전히 국산차를 외면하고 벤츠와 같은 외제차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동차 강국'의 주한 외국 대사들이 대부분 자국 차량을 의전용으로 사용하면서 홍보 효과를 거두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해외 공관장의 40%가 '벤츠'

16일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한국의 해외 공관장 차량 162대 중 외제차 비중은 절반을 넘는 51.9%(84대)로 집계됐다. 특히 전체의 39.5%(64대)가 벤츠 S클래스였다. 다음으로 캐딜락(GM) 9대,링컨(포드) 6대,BMW 2대,렉서스(도요타) 2대,시트로앵 1대 등의 순이었다.

국산차 중에선 에쿠스가 52대로 단연 많았다. 이어 쌍용 체어맨 13대,현대 제네시스 7대,그랜저 2대,베라크루즈 2대,기아 오피러스 2대 등이었다.

◆외국 대사들은 "자국차로 홍보"

자동차 강국의 주한 외국 대사들은 대부분 자국산 차량을 애용하고 있다. 캐슬린 스티븐스 미국 대사는 GM 계열의 고급 브랜드인 캐딜락 DTS를 이용 중이다. 배기량 4600cc이며 최고출력 291마력의 힘을 낸다. 한스-울리히 자이트 독일 대사는 BMW 730i를 탄다. 뒷좌석 승차감이 비행기 일등석과 맞먹을 정도라는 평가다.

무토 마사토시 주한 일본 대사는 렉서스 LS460을 관용차량으로 사용하고 있다. 렉서스가 '일본의 상징' 격인 도요타의 고급 브랜드란 점을 감안한 선택이다.

마틴 유든 영국 대사는 재규어의 대형 세단인 XJ를 탄다. '영국 신사'란 애칭을 가진 차다. 재규어는 대주주가 인도 타타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영국에서 전량 생산되고 있다. 엘리자베스 로랭 프랑스 대사는 푸조 607을 애용하고 있다. 고급 세단에선 보기 드물게 경유 엔진을 탑재했다.

마시모 안드레아 레제리 이탈리아 대사는 특이하게 제네시스를 타고 있다. 대표적 자국 브랜드인 피아트가 국내에 진출하지 않은 게 가장 큰 이유다. 장신썬 중국 대사는 쌍용차 체어맨W 리무진을 이용 중이다. 쌍용차는 법정관리로 들어가기 전까지 중국 상하이자동차를 대주주로 뒀다.

◆외교부,"국산차로 교체 추진할 것"

자동차 업계에선 공관장 관용차량의 상징성을 감안해 외제차를 국산차로 교체해주길 바라고 있다. 현대 · 기아차는 작년 5월 외교부와 '재외 공관의 업무용 차량 구입 및 관리에 관한 양해각서'를 교환했지만 기대만큼 실적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내부 규정상 관용차량의 차령이 6년을 넘어야 교체할 수 있는데,많은 공관에선 아직 시기가 닥치지 않았다"며 "각국의 수입차에 대한 형식 요건이나 법적 문제가 없으면 모두 국산차로 바꾼다는 게 기본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외교부는 우선 오스트리아 폴란드 네덜란드 스웨덴 등의 대사 차량을 종전 벤츠에서 에쿠스로 교체하는 작업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조재길/장성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