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친(親)서민 정책에 올인함으로써 피해를 가장 많이 보는 쪽은 누구일까. 아마도 서민을 주요 지지 기반으로 하는 민주당이 아닐까 싶다. 민주당은 봇물처럼 쏟아지는 정부의 친서민 정책으로 설 땅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지난 15일 손학규 민주당 전 대표의 여의도 복귀 기자회견도 이명박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와 다를 게 없었다. "시장이 승자 독식의 사회를 만드는 도구가 되어선 안된다"(손 전 대표)는 발언은 "공정한 사회에서는 승자가 독식하지 않는다"(이 대통령)는 말과 지향점이 같다. "서민과 중산층의 생활을 정치 활동의 우선에 두고…"(손 전 대표)는 "모두가 서민의 행복을 지원하는 데 책임을 다해야 한다"(이 대통령)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만큼 정부와 한나라당의 서민 정책이 이념과 정파를 넘어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사회 각계각층이 공정한 기회를 누리고 다같이 잘 살자는 캐치프레이즈를 누군들 마다하겠는가. 문제는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서민 정책의 요란한 구호 속에 경제 선진화의 초석이 되는 근본적인 정책들이 매몰되지 않나 하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는 것이다.

서민 정책의 상징격인 서민금융만 해도 경제장관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현장을 찾아다니며 다그친다. 예전 같으면 재무부의 중소금융과장 한 명이 했을 법한 일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직접 캐피털 회사의 고금리를 질책하고 미소금융을 챙기니 경제장관들이 온통 여기에 매달려 있는 꼴이다.

사실 경제팀이 정권 초기에 내걸었던 정책 목표는 색깔이 완전히 바랬다. 감세를 통한 경제의 활력 회복은 부자 감세 비판에 눌려 한 차례 세율 인하로 멈추고 말았다. 재정 건전성 확보라는 시대적 요청에 밀린 어쩔 수 없는 타협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의료,교육,전문 자격사 등 서비스 산업의 규제 완화와 개방에서 한 걸음도 진전을 이뤄내지 못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정부 스스로 위기에 취약한 대외 의존형 경제구조를 바꾸고 신규 고용을 창출하기위해 서비스 산업의 획기적 육성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결국 말잔치에 그친 셈이다. 법무법인에 있는 전직 장관 출신 김모씨는 "지금 경제팀이 서민정책에 파묻혀 있지만 일찍부터 서비스 산업 개혁에 온몸을 던졌더라면 국민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줬을 것"이라고 못내 아쉬워했다.

경제팀의 서민금융 챙기기도 뒤늦은 호들갑이다. 정권 초기부터 상호저축은행 등 서민금융회사들의 서민대출 외면과 무모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에 대한 경고음이 수없이 울렸는데도 손을 쓰지 않고 방관한 데 대한 자업자득이다. 정권 초기 엉뚱한 산업은행 민영화에 치중하다 시급한 우리은행 민영화를 챙기지 못하고 이제야 시동을 건 것 역시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경제팀이 글로벌 위기극복의 일등 공신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위기의 진앙에서 수천㎞ 떨어진 우리나라가 막대한 규모의 재정을 투입한 것을 감안하면 빠른 경제 회복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위기를 극복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이 제대로 하지 못한 일까지 면죄부를 받을 수는 없다.

지난 8일 개각에서 유임된 핵심 경제장관들은 오는 11월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 회의 마무리용 선수들이라는 말까지 나돈다. 그것만으로 그들의 임무가 끝난다면 경제 선진화의 초석은 누가 놓을 것인가.

고광철 논설위원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