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업종을 둘러봐도 메모리 반도체만한 성장산업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세계 최고의 블루오션을 주력으로 갖고 있는데 어디서 새로운 사업을 찾으라는 말입니까. "

권오철 하이닉스반도체 사장은 미래 성장을 위해 어떤 신(新)수종 사업을 준비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잘라 말했다. 그는 두 시간에 걸친 인터뷰에서 향후 메모리산업의 폭발적인 성장 잠재력을 강조했다. 라이프 스타일의 디지털화가 진전되는 속도에 비례해 세상은 더 많은 데이터 저장장치를 필요로 하게 될 것이고,이는 곧 메모리반도체 기업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얘기였다. 권 사장은 "이런 특성을 갖고 있는 분야에서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는 하이닉스가 주식시장에서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한 뒤 "시장 여건만 받쳐준다면 중 · 장기적으로 몇 배의 상승 여력은 충분하다고 본다"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요즘 D램 가격 하락 소식이 많이 들리는데,반도체 시황을 어떻게 보십니까.

"반도체 수요는 비교적 견조한 편입니다. PC용 반도체 공급이 늘어나 가격이 하락세로 접어든 것은 사실이지만,모바일과 서버용 수요는 여전히 강합니다. 하이닉스는 PC용 반도체 생산 비중이 40%도 안 되기 때문에 큰 걱정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

▼최근 일부 외국계 증권회사들이 매도 의견을 제시하고 있습니다만.

"반도체 가격이 고점을 찍었다는 이유로 과민반응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적이나 성장성 측면에서,또 단기나 중 · 장기적으로도 주가가 떨어질 일은 없다고 봅니다. "

▼현재 주가가 당연히 만족스럽지 않겠군요.

"지금 주가는 하이닉스의 현재 수준과 중 · 장기 잠재력이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습니다. 매년 2조원을 꾸준히 번다고 보면 지금 주가의 몇 배는 돼야 정상이죠.메모리산업의 미래 성장성도 전혀 고려하지 않은,상당히 저평가된 수준이라고 볼 수밖에 없어요. "

▼메모리산업의 성장을 점치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메모리는 이미 또 다른 성장기로 접어들었습니다. 흔히 스마트 전쟁이라고 하는데,스마트해지기 위해서는 더 질 좋고 더 용량이 큰 메모리를 쓸 수밖에 없어요. 저장해야 할 것이 늘기 때문에 인류가 메모리 사용을 위해 지불하는 금액도 증가할 수밖에 없는 거죠.게다가 메모리산업은 진입장벽이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새로운 경쟁자가 출현할 가능성이 낮다는 얘기죠."

▼앞으로 어느 정도 속도로,어떤 규모까지 성장할 것으로 보십니까.

"D램은 비트 기준으로 매년 50%,낸드플래시는 80%씩 성장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수급에 따른 일시적 가격 하락은 있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글로벌 메모리 시장 규모는 1000억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봅니다. "

▼비(非)메모리 사업에 재진출할 생각은 없습니까.

"핵심에 집중한다는 방침에 변함이 없습니다. 메모리 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될 때까지 다른 것은 안 한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

▼삼성전자를 비롯한 경쟁 회사들이 설비투자를 확대하고 있는데,하이닉스의 전략은 무엇입니까.

"한 회사가 물량을 크게 확대하는 것은 그 자체가 시장을 불안하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다른 회사들도 공급을 늘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죠.하지만 우리는 외형보다는 내실을 중시할 것인 만큼 시장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대응해 나간다면,크게 우려할 일은 없을 것으로 봅니다. 과거에 미리 해놓은 투자로 일부 공장에 여유공간이 있습니다. 투자를 늘리겠다는 의사결정을 내리면 즉각 설비를 들여올 수 있지요. "

▼낸드플래시 점유율이 8% 수준으로 하락했습니다.

"하이닉스가 한때 낸드플래시 시장의 19%가량을 점유한 적이 있는데,앞으로 그 수준까지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투자를 집행해 나갈 계획입니다. 최근 업계 최고 수준인 20나노 기술을 적용한 낸드플래시를 개발한 뒤 내부 분위기도 좋아지고 있어요. 내공(기술)을 갖고 있다면 시장점유율은 언제든 늘릴 수 있기 때문에 조급해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

▼현금은 어느 정도 보유하고 있습니까.

"2분기 말 기준으로 당장 현금으로 만들 수 있는 현금성 자산이 2조7000억원 정도이고,여기에 영업으로 벌어들이는 돈까지 합치면 전체 현금은 6조원이 넘습니다. 빚은 1년에 1조원 이상 갚아 나갈 예정이지만,한꺼번에 다 상환하지는 않을 생각입니다. 적정한 부채가 있어야 ROE(자기자본이익률)가 높아지고 투자 여력도 커지기 때문이죠."

▼반도체 시장은 변동성이 큰데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한 겁니까.

"3~6개월 정도는 고객의 반응이나 주문 강도,반도체 장비 공급 등을 고려해 예측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워낙 다양한 변수가 있어서 그 이상은 힘들어요. "

▼앞으로 대주주를 찾는 과정에서 내부적 문제도 있을 텐데.

"주인 찾는 과정은 양면성이 있어요. 주인을 찾으면 지속 가능성과 지배구조,경영환경 등이 모두 좋아지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꾸 화제에 오르면 실제와 달리 자생 능력이 없는 것처럼 보여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협력회사,고객 등에는 불확실성으로 비쳐질 가능성도 있고요. "

▼LG그룹은 채권단 등의 적극적인 권유에도 불구하고 인수할 의향이 없다고 하는데요.

"메모리산업이 갖고 있는 자본,기술,지식 집약적 산업의 특성상 아무나 대주주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LG는 훌륭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LG의 주주 입장에서는 시너지 효과를 집중적으로 볼 것이기 때문에 시각이 다를 수도 있어요. "

▼요즘 경제계에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 경영이 큰 이슈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반도체는 좋은 부품과 장치가 없으면 제대로 된 제품이 나올 수 없습니다. 타고 나기를 상생 없이는 안 되는 산업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많은 역량을 상생 경영에 투입하고 있습니다. 과거 하이닉스가 수조원의 적자를 낸 적도 있었지만,협력업체가 부도난 적은 없었어요. 우리가 많은 부담을 떠안고,협력사에 전가하지 않은 거죠."

▼최근 IT 호황으로 부품업체들만 이득을 본다는 얘기가 있는데요.

"길게 보면 세트와 부품은 균형으로 수렴하고 있다고 봅니다. 메모리나 LCD 모두 사이클 변동이 심하죠.2년 전 반도체 불황 때는 부품업체들이 득을 본다는 얘기가 전혀 없지 않았습니까. 오히려 세트업체는 새로운 프로젝트와 디자인,가격,브랜드 파워 등으로 성장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을 갖고 있지만 부품은 세트가 안 팔리면 팔 데가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

▼사람에 대한 투자는.

"장치산업이라고 하지만 사람에 대한 투자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게 반도체 업종의 특징입니다. 우리 회사 자산이 15조원인데,사람이 없으면 모두 고철 덩어리에 불과합니다. 자산은 감가상각이 발생하기 때문에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 적자 요인입니다. 반면 인적 자원은 경영의 주체이자 진정한 성장의 동력입니다. 금전적 보상도 중요하지만,세계적 반도체 회사에 근무하면서 보람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많은 배려를 해나갈 생각입니다. "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