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쌀 농사 풍년이 예상되면서 '쌀값이 더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감이 커지고 있다. 이미 저장할 곳을 찾기 힘들 만큼 쌀 재고량이 넘쳐나는데 추가 공급 요인이 생긴 것이다. 게다가 의무 수입물량을 줄일 수 있는 조기 관세화(시장 개방)까지 불발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올해도 풍년 가능성 높아

17일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농촌경제연구원은 이달 말께 "올해도 최소한 작년 수준 이상의 쌀 작황이 예상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할 예정이다. 태풍 등의 변수가 남아 있긴 하지만 적절한 날씨와 다수확 품종의 확산 덕분에 현재로서는 풍년이 들 가능성이 무척 높다는 것이다.

최익창 농촌경제연구원 연구원은 "오는 10월 초 정도가 돼야 확실한 윤곽이 드러나겠지만 쌀 생산이 줄어들 요인은 아직 없다"며 "올해 예상 생산량 범위는 작년 수준을 넘어서는 풍년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국내 쌀 생산량은 2004년 500만t에서 2005년 477만t,2006년 468만t,2007년 441만t으로 계속 줄어들다가 풍년이 들기 시작한 2008년 484만t,지난해 492만t으로 급증했다. 작년 수준만 유지해도 올해 500만t가량이 생산되는 셈이다.

쌀 재고량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2008년 68만t이던 쌀 재고량은 지난해 100만t으로 증가한데 이어 올해는 140만t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생산량 증가 외에 의무 수입물량까지 매년 2만t씩 늘어난 탓이다. 식생활 다변화 등의 영향으로 쌀 소비량도 2007년 506만t에서 작년에는 482만t으로 감소했다. 이처럼 쌀이 남아돌면서 농식품부는 오래된 쌀을 사료용으로 사용하는 것까지 검토하고 있다. 미국 농무부는 최근 발표한 '세계 농산물 수요 공급 예상 보고서'에서 전 세계 쌀 재고량 가운데 한국이 차지하는 비율이 2008년 1.1%에서 올해 1.7%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쌀값 더 추락하나

수급 불균형으로 쌀값은 바닥을 모를 정도로 추락하고 있다. 산지 평균 쌀값(80㎏)은 작년 4월부터 한 달도 빠지지 않고 내리다가 지난 6월 13만4399원으로 1191원(전달 대비 0.89%) 소폭 상승했지만 지난달에 13만4045원으로 다시 하락 반전했다. 문제는 올해까지 3년 연속 풍년이 들면 하락 추세가 상당 기간 더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백형일 농협중앙회 양곡부 차장은 "올초부터 쌀값이 상승 반전할 것이라는 예상이 계속 나왔지만 풍년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점차 비관론이 확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조기 관세화라도 이뤄져야 수급의 숨통이 트일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조기 관세화는 적정한 관세를 매기는 대신 쌀 수입 시장을 개방하자는 것이다. 한국은 1995년 발효된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에서 개방을 유예하는 대신 매년 쌀 의무수입량을 2만t씩 늘리고 있다. 올해 수입 물량만 32만t에 달한다.

그러나 관세화를 위해 세계무역기구(WTO)에 통보해야 하는 시한이 다음 달 말로 다가왔는데도 농식품부는 "농민단체들의 동의가 없다"며 아직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한 전문가는 "장관까지 교체되면서 관세화 논의는 더 공중에 뜨게 됐다"며 "관세화가 결국 실패하면 쌀값 하락으로 농민들은 더 큰 고통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