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기 회복세가 둔화되고 있는 가운데 주요 국가들의 자국 통화 평가절하 경쟁이 심해지고 있다. 민간 부문의 자생력은 아직 약하고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실시한 대규모 경기부양책으로 재정여력도 부족한 상황에서 각국 정부가 경기 회복세를 이어갈 수 있는 방편으로 통화가치를 떨어뜨려 수출을 늘리는 전략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유로화 가치 하락이 도화선

통화가치 절하 경쟁의 시발점은 유로화 가치 하락이다. 유로화 가치 하락은 독일을 비롯한 유로존 국가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은 높이고 그 외 국가의 가격 경쟁력은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으면서 국가 간 환율 전쟁의 도화선이 됐다.

지난해 말 유로당 1.4339달러였던 유로화 가치는 재정위기에 따른 불안감이 극에 달했던 6월 초 1.1921달러까지 하락,반년도 안 되는 사이 17%나 하락했다. 유로화는 유럽 재정위기에 대한 우려가 가라앉으면서 지난 9일 1.3277달러까지 오르기도 했지만 이후 하락세로 반전,17일 1.2777달러로 떨어졌다.

유로화 가치 하락은 유럽 경제의 불안한 상황을 반영한 것이지만 역설적으로 유럽 경제 회복의 발판이 되기도 했다. 독일 등 수출 비중이 높은 나라가 유로화 가치 하락의 수혜를 입었다. 유로존 경제의 30%가량을 차지하는 독일은 6월 수출이 전년 동월 대비 28.5% 늘면서 2분기 국내총생산(GDP)이 전기 대비 2.2% 증가했다. 이에 힘입어 유로존의 2분기 GDP는 전기 대비 1.0% 늘어,증가율이 1분기의 0.2%보다 크게 높아졌다.


◆일본도 시장개입 움직임

중국의 환율 정책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중국 인민은행은 17일 위안화 환율을 1달러당 6.7979위안으로 고시했다. 이는 6월 중국이 관리변동환율제로 복귀하기 전의 6.83위안보다는 하락(위안화 절상)한 것이지만 9일 고시했던 6.7685위안보다는 상승(위안화 절하)한 것이다. 16일에는 고시환율이 6.8064위안까지 올랐었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유로화 가치 하락으로 이미 수출시장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어 앞으로도 위안화 가치를 낮게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하고 있다.

외환시장 개입을 자제해온 일본마저 최근에는 엔화 강세를 저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본은 엔화가 달러 대비 강세(환율 하락)를 지속,엔 · 달러 환율이 15년 만에 가장 낮은 85엔대까지 떨어지면서 수출이 감소하고 이로 인해 투자와 소비가 줄어드는 악순환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일본 엔화 가치는 그리스 사태 전 달러당 94엔에서 최근 10% 절상됐다.

◆무역장벽과 비슷한 결과 우려

각국의 통화가치 절하 경쟁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통한 내수 부양이 한계에 이른 상황에서 경기 회복세를 이어갈 수 있는 수단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개별 국가 입장에서 수출 증대를 위한 통화가치 절하는 경쟁국의 수출에 타격을 입혀 연쇄적인 통화가치 절하를 촉발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각국이 수출을 늘리겠다며 경쟁적으로 통화가치를 떨어뜨릴 경우 무역장벽을 쌓는 것과 비슷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