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부동산으로 돈 버는 시대 끝나"…신규사업 '실탄'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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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유 부동산 왜 파나
롯데, 6개 점포 매각…6000억 자금 마련 나서
SC제일銀 점포건물 27곳, 세일&리스백 방식으로 처분
롯데, 6개 점포 매각…6000억 자금 마련 나서
SC제일銀 점포건물 27곳, 세일&리스백 방식으로 처분
대기업과 금융사들이 갖고 있는 부동산 을 본격적으로 처분하고 있다. 수익성이 떨어지거나 활용도가 낮은 부동산을 팔거나,부동산을 매각한 뒤 임대로 빌려 쓰는 '세일 앤드 리스백(sale & leaseback)' 등을 통해서다. 이는 재무 건전성을 강화하고 향후 필요한 현금 실탄을 확보하기 위한 포석으로 분석되지만 부동산 시장의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두드러지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보유 부동산 앞다퉈 매각
롯데쇼핑은 세일&리스백 방식으로 백화점 1곳과 대형마트 5곳을 패키지로 묶어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부동산 자산 유동화 사모펀드' 조성을 진행 중이며,미국계 대형은행 등이 참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롯데쇼핑이 매각 후 10~20년간 빌려 쓰고 펀드 만기 후 우선적으로 되살 수 있는 조건(바이백 · buy back)으로,매각 대금은 6000억원대로 알려졌다. 수익률이나 펀드 규모,재매입 방식 등 구체적인 조건은 내달 초쯤 확정된다.
롯데쇼핑이 부동산 유동화를 통해 현금 확보에 나선 것은 2008년 초 부동산투자회사인 'ING KPI'에 롯데마트 제주점과 인천 항동점,대전 대덕점 등 3개 점포를 매각하고 14년간 임차하는 조건으로 2200억원을 조달한 데 이어 두 번째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롯데쇼핑뿐 아니라 롯데칠성 롯데제과 등 우량 자산을 보유한 타 계열사들도 세일&리스백 방식의 부동산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SC제일은행도 세일&리스백으로 점포 건물을 매각하고 있다. 은행소유 점포건물 96개 가운데 지난해 24개,올해 3개를 매각했다. 점포는 옮기지 않고 그대로 임차했다. 여기에서 남은 자금으로 신규 점포 개설에 나서 작년 이후 34개를 늘렸다. SC제일은행은 앞으로 은행 소유 점포건물을 최대한 매각키로 내부 방침을 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SK그룹도 지난해 말부터 올 상반기까지 2000억원 규모의 보유 부동산을 처분했다. 주요 매각 대상은 전국의 주유소다. SK에너지는 자사 1호 주유소인 서울 동교동 청기와주유소 부지를 건설 시행사에 500억원에 팔았다. SK에너지 관계자는 "시행사 등 외부 사업자들이 사들이면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곳들이 주요 매각 대상"이라며 "청기와주유소 부지는 도시형 생활주택 등을 지으면 더 많은 수익을 얻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자영 SK에너지 사장은 지난 6월 "비핵심 사업 설비와 부동산 등 자산 매각을 통해 재무구조를 개선하겠다"며 "청기와주유소를 외부에 팔았듯이 일부 주유소 부지도 매각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KT도 전국의 콜센터 등 최대 3000억원 규모의 보유 부동산 매각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부동산 깔고 앉아 있을 이유 없다
부동산 업계는 기업들이 부동산을 매각하는 목적을 크게 두 가지로 분석하고 있다. 재무 건전성을 높이면서 향후 대규모 투자에 필요한 실탄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롯데는 점포 매각자금의 대부분을 지난해 10월 중국 타임스(7300억원)와 올 2월 GS스퀘어 · 마트(1조3400억원) 인수로 증가한 차입금을 줄이는 데 사용할 계획이다. 롯데쇼핑 관계자는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토지,건물 등 유형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64%로 상당히 높은 편"이라며 "일부 자산을 유동화해 몸집을 가볍게 하고 총자산이익률(ROA)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향후 어두운 부동산 시장 전망도 매각 요인으로 꼽힌다. 부동산 정보업체 한 관계자는 "부동산 보유를 통해 시세 차익을 얻는 시대는 사실상 끝났다는 전망이 우세해지면서 기업들의 부동산 매각도 줄을 잇고 있다"고 분석했다.
세일&리스백 방식의 매각이 늘어나는 것은 부동산 시장의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기업들은 부동산을 팔아 장기 보유에 따른 리스크를 줄이고,투자자들은 매입 부동산을 그대로 빌려줌으로써 임대료를 통한 안정적인 투자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롯데그룹의 부동산 매각에는 신동빈 부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 관계자는 "신 부회장은 일본 유통업체들이 자산가격 급락 과정에서 겪은 심각한 후유증을 잘 알고 있다"며 "일본 최대 유통기업인 이온그룹 등은 점포를 사는 대신 임차하는 방식으로 살아 남았고 소호백화점 등 부동산 보유를 고집한 유통업체는 간판을 내렸다는 사실을 강조해 왔다"고 전했다.
또 내년부터 전 상장사와 금융회사에 국제회계기준(IFRS)이 도입됨에 따라 자산재평가를 해야 하는데,이 과정에서 장기 보유 부동산의 시가 반영으로 장부상 자산이 늘어나는 데 따른 부담을 줄이기 위한 조치로도 해석된다. 이정조 리스크컨설팅 사장은 "예전엔 부동산을 오래 전에 샀더라도 구입가격으로 장부에 반영하고 있지만 IFRS는 시세로 평가해야 하기 때문에 자산재평가 과정에서 자산이 불어나게 된다"며 "기업 입장에서는 장부상으로만 자산이 늘어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성선화/송태형/이정호 기자 doo@hankyung.com
세일&리스백
sale & leaseback. 기업이 보유 자산을 매각한 뒤 다시 임차하는 형태로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이다. 기업은 소유권을 넘겨주고 임대료를 내야 하지만 자산을 그대로 쓰면서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부동산의 경우 계약과 동시에 매도자(기업)가 빌딩을 빌려 매수자에게 임대료 수입을 보장해 준다. 매도자가 매입 우선권을 행사할 수 있는 조항이 붙는 것이 일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