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논의가 정부의 연구 · 개발(R&D) 자금 배분의 적정성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정부의 R&D 지원이 대기업에 편중돼 있어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이분법적인 편가르기로 흐르지 않고 바람직한 정부 지원체계를 모색하는 데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정부 R&D 지원의 본질적인 논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현재 정부 R&D 예산 규모는 약 13조원 수준이며,최근 들어 매년 10% 정도의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정부 R&D 예산 규모가 커져감에 따라 정부에 의한 민간 R&D 지원의 정당성 여부와 함께 과연 누가 지원대상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도 더욱 거세지고 있다. 이는 우리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추세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되는 정부 R&D 자금의 이론적인 근거는 기술의 공공재적 성격에 있다. 즉 기술은 이를 개발한 주체의 의사와는 달리 주변으로 퍼져가게 마련이고,이는 기술 개발의 유인을 줄여 R&D 활동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수준보다 밑돌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의 R&D 지원은 이런 시장 실패를 보완하는 것으로서,특정 기업에 대한 특혜가 아니라는 논리다.

따라서 정부 R&D 지원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이를 통해 민간의 R&D 투자가 유인 또는 촉진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어떤 기업이 정부 지원제도가 없는 상황에서 일정한 규모의 R&D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고 하자.만약 이 기업이 정부 지원을 받게 된다면 자신의 R&D 지출을 당초 수준보다 늘릴 수도 있고 줄일 수도 있다. 이 경우 자신의 R&D 투자 규모를 늘릴 경우에만 R&D 보조금은 정당화된다.

그렇다면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유인효과가 있는 R&D 프로젝트를 선정해 지원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쉽지 않다. 우선 어떤 프로젝트가 유인효과가 기대되는지를 평가하기 쉽지 않다. 나아가 지속적인 예산 확보 등을 위해 R&D 프로그램의 단기적인 성공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기업이 이미 개발을 염두에 두고 있는 프로젝트나 대기업들이 주로 지원 대상이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즉 정부 R&D 지원 문제는 본질적으로 이론적인 정당성과 현실적인 요구 사이에 낀 딜레마라고 할 수 있다.

딜레마에는 정답이 없다. R&D 지원의 이론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상충되는 요구를 조화롭게 풀어나가야 한다. 우선 지원대상의 선정에 있어 기업 규모보다는 R&D 프로젝트의 성격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시장성이나 민간의 기술 수준 등을 고려할 때 정부가 지원하지 않더라도 가까운 시기에 민간에 의해서 수행될 수 있는 프로젝트라면 지원하지 않는 것이 맞다. 지원 대상이 중소기업이냐 대기업이냐 하는 것은 이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다음으로 기업 중심의 지원보다는 대학 등 연구기관 중심의 지원체계를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중소기업의 참여와 기술적인 수혜를 늘려 갈 수 있다. 이와 함께 각 기술 또는 산업 분야별로 R&D 자금을 얇게 펼쳐 지원하기보다는 민간의 노력만으로는 가까운 시기에 세계 수준을 따라잡기 힘든 핵심 산업에 집중 투자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R&D 지원의 편중 여부를 논하기 전에 정부 지원의 논리적 근거와 현실적인 적용 가능성을 꼼꼼히 짚어 가면서 현재의 지원 및 평가체계를 보다 조화롭게 다듬어 나가는 것이 먼저다. 이와 함께 R&D 지원에 있어서의 포퓰리즘적 주장을 경계하면서 아울러 성공률에 집착하는 행태도 바꿔 나가야 한다.

무엇보다도 정부와 기업은 R&D 지원 자금이 국민의 세금에서 나온 것임을 깊이 새겨야 한다.

이창양 < KAIST 교수·정책학 >